□ 고종 44권, 41년(1904 갑진 / 대한 광무(光武) 8년) 3월 20일(양력) 5번째기사
안종덕이 역적죄인 가운데 잡힌 12명을 사형하도록 청하다
【國譯】
“법부(法部)에 비준되어 내려온 평리원(平理院)의 선고서를 보니, ‘모반(謀反)한 대역부도(大逆不道) 죄인(罪人) 장호익(張浩翼) 등 21명의 역적은 이 세상 만고에 있어본 적 없는 자들입니다. 소위 피로써 맹약한 다섯 가지 조목은 신하로서는 차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히 읽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 이 세상에 아직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는 이상, 어찌 이처럼 흉악한 종자들과 악독한 요물을 하늘 땅 사이에 낳아 존엄한 임금을 원망하고 이웃 나라에 수치를 끼친단 말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듣건대 이 역적들 중 도망친 자들을 제외하고 12명이 연전에 체포되어 이미 심리를 거쳤다고 합니다. 모두 때를 기다릴 것 없이 처형해 버려야 할 자들인데, 그간 법 맡은 관리들은 무엇 때문에 오늘까지 세월을 질질 끌며 도리어 비호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옥사(獄事)의 실정은 극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껏 알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요행히 처결한 것을 들었습니다. 이에 감히 아뢰니 황상(皇上)은 깊이 생각해서 해당 율(律)을 시행함으로써 법의 기강을 바로 세우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처분을 하였으니 번거롭게 굴 필요가 없다.”
하였다.
【원본】 48책 44권 33장 A면
【영인본】 3책 324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원문】
卽伏見法部奏下平理院宣告書, 謀反大逆不道罪人浩翼等二十一賊, 卽窮天地、亙萬古所未有者。 其所謂血約五條, 乃爲人臣子之所不忍見、不忍聞、不敢讀、不敢言者也。 嗚呼! 此世界, 尙上有天而下有地, 則胡爲産出此凶種、惡物於覆載間, 懟君父之尊而貽隣邦之羞哉? 竊聞此賊等, 在逃外, 十二漢被捉, 在年前旣經審査。 竝是不待時處刑者, 而其間爲法官者, 何故淹延歲月以至今日, 反若庇護而俟時者耶? 獄情甚祕, 早未聞知, 今則幸而得聞司法矣, 玆敢冒陳。 伏乞皇上淵然深思, 施以當律, 以正法綱。
批曰: “旣有處分, 不必爲煩。”
【원본】 48책 44권 33장 A면
【영인본】 3책 324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고종 44권, 41년(1904 갑진 / 대한 광무(光武) 8년) 7월 15일(양력) 2번째기사
중추원 의관 안종덕이 상소를 올리다
【국역】
“5월 21일에 내린 칙서(勅書)를 삼가 보니, 빛나는 586자의 말은 간곡하기 그지없고 엄정하면서도 측은하게 여긴 것이었는데,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하며 신하들을 신칙(申飭)한 내용은 마치 해와 달처럼 밝고 쇠나 돌처럼 확고한 것이었습니다. 멀리로는 〈요전(堯典)〉·〈순전(舜典)〉·〈대우모(大禹謨)〉가 남겨 놓은 원칙을 계승한 것으로서 세밀하기로는 그것들을 능가하는 것이며, 가까이로는 선대의 거룩한 임금들이 전수한 심법(心法)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항목들이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쓴 여덟 자의 글은 50년 동안 성인(聖人)의 학문을 닦는 과정에서 심오하게 터득하여 도출된 것임을 더욱 알 수가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거룩한 황제와 밝은 임금들이 천하를 다스린 크나큰 원칙과 법도나 어진 신하들과 뛰어난 정승들이 황제(皇帝)를 보좌한 훌륭한 계략과 방책들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로 청렴이라는 것은 의리와 예의의 틀이고 근면이라는 것은 지식과 행동의 용기입니다. 공정이라는 것은 어진이의 큰 덕이며 신의라는 것은 덕을 세우는 기초입니다. 이것은 횡으로 보면 《맹자(孟子)》의 사단(四端)인 것이고 종으로 보면 《중용(中庸)》의 삼덕(三德)입니다. 만일 사사로운 욕망을 깨끗이 털어 버리고 하늘이 준 덕을 환하게 닦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신은 두 손으로 받들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읽어보고 크게 탄복하였습니다. 아! 대단하시고 훌륭하십니다.
만약 이 네 가지가 시행되면 역사에 기록된 훌륭한 황제가 다섯이던 것이 여섯으로 늘 것이며, 명철한 임금이 셋이던 것이 넷으로 늘 것입니다. 제오륜(弟五倫)이 조서(詔書)만을 보고 한눈에 한(漢) 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성주(聖主)임을 알아보았듯이 신 역시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산동(山東) 지방의 늙은이와 봉천(奉天) 지방의 사나운 군사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던 일을 장차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폐하의 신하와 백성들 가운데 감격하여 폐하의 뜻을 체현하려고는 생각지 않고 감히 네 가지 훈계를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신하된 의리가 없는 자이니, 하늘이 반드시 주벌할 것입니다. 신의 충성심이 어리석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옛사람이 밝은 임금을 아끼고 정사가 잘되는 세상을 염려한 뜻은 지니고 있기에 감히 폐하가 자책하고 격려한 것을 가지고 되돌려 폐하를 위해 아뢰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폐하가 임오년(1882) 이후부터 수십 년 동안 환난이 생길 때마다 밝은 조서를 내린 것이 몇천 몇백 마디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애통해하고 측은해하는 뜻이 언제 오늘날의 것처럼 절절하지 않은 적이 있었으며 자신을 반성하고 아랫사람을 격려한 것 역시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 하기를 바라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관리들의 탐오 행위와 착취는 전과 같아지고 온갖 일을 게을리 하고 안일하게 지내는 것도 전과 같아졌으며 법률이 사사로운 목적으로 인해서 굽혀지고 공정치 못한 것도 전과 같아지고 정령(政令)이 자주 뒤바뀌어 신의를 잃게 되는 것도 전과 같아졌습니다. 격려하고 갱신한 보람은 하나도 없고 대신 아래로만 흘러 내려가는 강물처럼 세도(世道)는 점점 낮아지기만 하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말로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얕고 마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깊다고 합니다.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통하여 표현되기 때문에 《주역(周易)》에는, ‘마음과 일치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 향과 같다.’라고 하였고,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이 울어도 그 새끼가 화답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말이란 자신에게서 나와서 백성들에게 미치며 가까운 데서 시작되어 멀리서 시행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은 군자(君子)가 천지를 움직이는 수단이므로 군자는 말을 할 때에는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을 할 때에는 말을 돌아보니,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할 바에는 말을 안 하는 편이 나은 것입니다. 은(殷) 나라 고종(高宗)은 삼가 침묵을 지키며 도리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중도에서 나라를 부흥시키는 교화를 이룩할 수 있었고, 초(楚) 나라 장왕(莊王)은 날고 뛰며 울며불며 하지 않고도 오패(五覇)의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말로 한 것이지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임금의 한결같은 마음은 온갖 교화의 근원입니다. 마음이 순결하게 한결같지 않으면 제 자신도 수양할 수 없는데, 더구나 남이나 나라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폐하(陛下)께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말로 하였지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신이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하나 진술하겠습니다.
대체로 아래에서 위를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풀이 바람이 부는 대로 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윗사람이 청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탐오하며, 윗사람이 근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게으르며, 윗사람이 공정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사(私)를 쓰며, 윗사람이 신의가 있는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속이는 짓을 하겠습니까? 지금 폐하는 청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탐오 행위를 한 오점을 가지고 있고 지방의 백성들은 생계가 거덜났다는 탄식이 많습니다. 뇌물이 성행하여 관청의 법도가 문란해졌으며, 탐학한 자들이 도처에 넘치고 도적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이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바로 폐하께서 청렴에 착실하게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체로 청렴이라는 것은 청백하고 검소한 것이니, 깨끗하여 외람되거나 흐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한서(漢書)》에 이르기를, ‘염치가 없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동자(董子)는 이르기를, ‘옛날의 군자들은 아래에서 숭상하도록 행동을 하고 따르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의 청렴함에 감화되어 탐오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보면 폐하께서 청렴에 마음을 두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탁지부(度支部)의 정공(正供)은 모두 폐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별도로 내장원(內藏院)을 설치하고 거두어 들이기 잘하는 신하로 하여금 주관하도록 해서 탁지부에 들어가야 할 일체 공전(公田), 사전(私田), 개인 토지, 산과 못, 어장과 염전, 인삼포(人蔘圃), 광산 등속을 떼어내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탁지부의 경비가 바닥나 녹봉과 급료, 공사비로 줄 비용이 없으면 대뜸 내탕전(內帑錢)이라 하여 바꾸어서 충당하게 하고는 뒤따라 나라 빚을 독촉하듯 보상하라고 요구합니다.
근래에는 또 나라 안의 언덕과 들판, 산림과 강이나 바다, 제언(堤堰), 어장과 사냥터로서 개간해서 곡식을 심고 확장해서 정리할 만한 것들을 탁지부에 넘기지 않고 특별히 어공원(御供院)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관할하게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임금에게 올릴 중한 공물(貢物)을 꼭 이런 묵인 땅이나 황무지 같은 몹쓸 데서 나는 물건들로 바쳐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모두 백성들에게 청렴치 못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 풍속이 어떻게 아름다워지며 백성들이 어떻게 탐욕스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이밖에도 차마 말 못할 문제도 있지만 폐하께서 전부를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으므로 신이 폐하에게 한 번 진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친왕(英親王)으로 말하면 폐하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사람이 제 자식을 사랑하기는 성인(聖人)이나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성인의 사랑은 자식의 덕을 키워 주려는 것이므로 복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보통 사람의 사랑은 자식의 재산을 늘려 주려는 것이므로 뜻을 손상시킵니다. 지금 영친왕은 아직 출합(出閤)하기 전인데도 먼저 궁궐을 관할하는 부〔邸府〕를 설치하였고, 특별히 총애받는 탐욕스럽고 포학한 무리들이 궁장(宮庄)을 구입하는 사자(使者)라는 핑계로 사방에 나가 토색질을 마구 하며 나라 안에 두루 기름진 땅을 마련하고 강과 하천마다 세(稅)를 거둬들이는데 절반은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지만 허실을 조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빼앗겼다는 원성과 강제로 샀다는 송사(訟事)에 귀가 아플 정도이니, 사람들의 원망이 비록 어린 황태자에게 쏠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가는 말이 곱지 못하면 오는 말도 곱지 못한 것은 인간의 상례(相禮)입니다. 이것은 폐하의 청렴한 덕에 손상이 될 뿐 아니라 영친왕의 덕성을 성취하기 위한 도리에도 해로울 것 같습니다.
옛날의 하간왕(河間王)이나 동평왕(東平王)이라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폐하는 어째서 영친왕이 가난할까봐 걱정하면서 이처럼 간사한 자들의 농간질을 그냥 내버려 두는지 신은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신은 두 원(院)을 속히 없애고 거기서 가지고 있던 재정을 일체 탁지부에 돌려줌으로써 티없이 청백하고 검소한 뜻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영친왕과 관련된 사무와 같은 것도 부(府)의 관리로 하여금 잘 보살피게 하고 백성들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원망이 될 수 있는 장원(莊園)에 대한 과세(課稅)를 일체 없앰으로써 덕을 키워 복을 닦는 뜻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벼슬을 파는 문제로 말하면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한(漢) 나라의 서쪽 후원(後苑)에서 벼슬을 팔고 진(晉) 나라의 개인 집에서 벼슬을 팔던 일이 모두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차마 그 전철을 몸소 밟으십니까? 대체로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리들로 말하면 하늘이 준 벼슬이고 임금이 함께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어찌 공공연히 사거나 팔아먹을 물건이겠습니까? 저 간교한 토호들과 아전(衙前)들이 완악하고 염치없는 마음으로 감히 요행으로 폭리를 얻어 볼 생각을 품고, 부유한 자는 재산을 털고 가난한 자는 이리저리 빚을 내어 먼저 10배 값을 실어다 주고서 밑지는 장사로 수령(守令) 자리를 사는데, 그가 장차 나라 일을 위하겠습니까, 자신을 위하겠습니까? 빚을 갚고 제가 차지할 이득을 장차 어디에서 짜내며, 부임한 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하는 짓이란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게다가 사적으로 뇌물을 받아먹는 행위가 계속되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본전을 놓칠 것이니, 이런 형편에서 그가 하는 정사가 과연 청렴한 것이겠습니까, 탐욕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남의 자식의 살을 베어 그 부모의 좌우 사람들을 먹이면서 자기도 그 나머지를 먹는 데도 부모는 좌우 사람들이 배불러 하는 것을 기뻐하면서 도마 위에 오른 제 자식을 구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 폐하의 자식된 사람들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도적들의 약탈로 나라 것이건 개인 것이건 몽땅 거덜나고 탐오와 횡령 행위가 꼬리를 물어 감옥이 늘 넘쳐 나며 창고의 재산이 늘 모자라고 군사를 동원해도 토벌할 수 없으니, 장각(張角)이나 갈영(葛榮)의 난과 같은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벼슬을 팔아 얻는 이득이 그 비용을 보충하고 그 화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에 와서 볼 때 과연 이롭고 해로운 것이 어떠합니까? 조정의 신하들 중에서 조금 문제를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탄하고 있지만, 막상 폐하를 위해 계책을 낼 때면 장률(贓律)을 엄하게 적용하여 포흠을 징수해야 한다느니 방책을 세워 도적을 없애야 한다느니 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근본을 바로잡을 데 대해서는 한 사람도 논하는 자가 없습니다. 물으면 이것은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하면서 마치 폐하께서 이런 짓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신하로서는 간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을 착한 말을 올려 간사한 것을 막는 공경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폐하를 위해 적이 통탄스럽게 여깁니다.
다행히 폐하의 생각이 이 문제에 미치어 요즘 엄하게 막아 좌우 사람들이 뇌물을 받아먹지 못하는 지가 몇 달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또 교묘한 말과 그럴듯한 참소(讒訴)로 폐하를 눈멀게 하고 벼슬을 주는 관리들과 내통해서 다시 구태를 답습하는 일이 없겠습니까? 오로지 한마음 깨끗한 것을 굳게 지키고 폐하의 명령 중 청렴〔廉〕이라는 한 글자를 밝히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 계강자(季康子)가 도적을 걱정하며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말하기를, ‘진실로 그대가 욕심이 없으면 설사 상을 주더라도 도적질을 안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계씨(季氏)가 제후국의 대부(大夫)로서도 오히려 욕심을 버려 도적을 없앨 수 있었거늘, 하물며 황제가 마음을 바로 가지는 경우에야 그 효력이 도적이나 없애는 데 그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살펴야 할 것입니다.
토목 공사 같은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줄곧 무절제하게 일으키는 것도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은 역대의 사적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궁전이나 침묘(寢廟)나 사당이나 제단, 관청 건물 같은 것 가운데 세월이 오래되어 수리해야 할 것들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하는 경우에도 시기와 역량을 잘 헤아려 절약하고 검소하게 해야 한다는 경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궁(離宮)이나 별관(別觀)이나 부정한 사당이나 사원과 같은 것들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이익은 커녕 손해만 끼치는 것이니, 어찌 한 푼인들 나라 창고의 돈을 축내며 한 명인들 백성들의 노력을 허비하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폐하가 황위에 오른 40여 년 간에 한번도 안일과 사치를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토목 공사만은 잠시도 그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사를 감독하는 무리들이 대궐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목재와 석재를 실은 수레가 노상에 연달았으며 도끼 소리, 톱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는데, 모르기는 하겠으나 정말 이 모든 것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공사들이었습니까, 아니면 혹시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한 것입니까?
아! 을미년(1895) 후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移御)하신 것은 변란에 처하여 임시로 취한 조치였습니다. 좁고 허름해서 얼마간 수리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월(越) 나라 구천(句踐)이 산에서 거처하던 곳이나 위(衛) 나라 문공(文公)이 들에서 거처하던 것에 비하면 역시 사치스럽고 훌륭한 것입니다. 신이 어리석어 죽을죄를 짓고 있습니다만, 만일 폐하에게 치욕을 씻고 복수할 뜻이 있다면 수수하게 지내면서 괴로움을 달게 여겼을 것이며 백성들을 늘이고 가르치는 등 허다한 큰일을 하기에도 장차 겨를이 없을 터인데, 무슨 여가에 궁전을 짓고서 안일하고 화려하게 살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경복궁(景福宮)과 창덕궁(昌德宮) 두 대궐은 우리 고황제(高皇帝)가 잡은 수도의 옛 터전이고 역대 임금들이 살아온 법궁(法宮)이니 그 섬돌을 밟고 즉위하신 폐하의 의리상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경운궁으로 말하면 우리 선조께서 다시 수도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짓고 거처하던 곳입니다. 대체로 전란 통에 옛 대궐이 불탔으나 미처 다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이 좁고 모양이 누추하였지만 선조 때에는 고치지 않았으니, 훌륭한 임금은 이렇게 백성들의 재력을 아끼고 키웠을 뿐 아니라 크나큰 피해를 입은 당시 나라를 부흥시키는 데만 뜻을 두고 궁실을 잘 짓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16년 동안에 어찌 수리하여 넓힐 힘이 없었겠습니까? 이는 옛것들을 훌륭히 복구하고 상처 입은 것들을 잘 소생시켜 우리에게 끝없는 업적을 넘겨주려고 해서였습니다. 오늘 나라의 상처가 선조 때에 비하여 어떠하기에 그저 무사태평으로 한가히 지내며 안일에만 마음을 쓴단 말입니까?
마침 외국의 군사들이 수도에 들어온 때에 불행하게도 화재가 나는 바람에 나라의 오랜 법전들과 대대로 전해 오는 귀한 기물들까지 모두 불타 버렸으니, 이것은 작은 변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이 경계를 보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두려워하고 반성함으로써 하늘의 뜻에 사례하고 그날로 선대 임금들의 옛 처소로 돌아가서 선대 임금들의 옛 정사를 시행하는 것이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들을 다같이 기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가만히 듣건대, 폐하께서는 아직 불이 꺼지기도 전에 곧바로 장역들을 불러서 다시 세우는 일을 의논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조심하여 하늘을 공경하는 도리이겠습니까? 당장 재력이 곤란하고 시국이 소란한 것은 둘째로 칠 근심거리고 오직 두려워할 것은 하늘의 뜻과 백성들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하늘에 순응하는 사람은 흥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의사에 순응하는 도리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심에 순응하는 데 있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민심에 순응함으로써 하늘에 순응하소서.
또한 듣건대, 서경(西京)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한 도(道)의 민력이 먼저 고갈되었다고 합니다. 대개 이 공사는 보잘것없는 간사한 자들이 원칙에서 어긋나는 망령된 설을 조작해 폐하를 속이고 그에 빙자하여 백성들을 착취하려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간사한 정상이 낱낱이 드러난 이상 죄를 주어 처단해야 하겠지만, 해당 방면의 여러 신하들까지 거기에 추종해서 찬성하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입니까?
신이 어리석어 죽을죄를 짓고 있습니다만, 서경(西京)에 궁전을 건축하는 것이 나라에 무슨 이익을 주며, 백성들의 원한을 쌓으면서 궁전을 만들어 놓고 중하기 그지없는 황제와 황태자의 진전(眞殿)을 멀리 그곳에 모셔다 두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입니까? 옛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것 역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까?
지금 강대한 이웃 나라 군사들이 국경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데 서경은 공교롭게도 그 요충에 있으니, 장차 화가 미칠지 모릅니다. 신은 진전을 속히 도로 모셔 오도록 하되 의장을 간소하게 하고 갑절로 빨리 오도록 하는 일을 늑장 부리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궁전 공사는 영영 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서도(西道)의 백성들이 소생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지금 중앙과 지방에 새로 짓는 사원과 부정한 사당이 몇이나 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모두 헛되이 비용이나 허비하고 백성들이나 들볶아 대며 간사한 자들에게나 이익이 돌아가고 나라에서는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몽땅 짓지 말며 이미 지은 것은 헐어 버리고 앞으로 지을 것은 그만둠으로써 온 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폐하가 진정으로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토목 공사를 벌이는 것은 검소한 것을 숭상하지 않는 데 관련되어 있습니다. 검소하지 않으면 청렴해지지 못합니다. 이처럼 재력이 궁핍한 때에 기근까지 닥치고 전쟁까지 덮친 마당에 백성들을 부리는 것이야말로 폐하의 청렴한 덕을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신이 감히 말을 올려 마지않는 것이니, 폐하께서는 살피시기 바랍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근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에는 게으른 습성이 있어 무슨 일이나 성사될 가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의정부(議政府)의 회의는 모여 앉자마자 헤어지고 각부(各部)의 사진(仕進)에 대해서는 여러 번 신칙(申飭)하였는데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령(守令)이 결원되어 있으나 해가 지나도록 임용되지 않는 것은 전형을 맡은 관리들이 태만한 탓입니다. 죄수들이 옥에 갇혀 있어도 계절이 바뀌도록 심리하여 판결하지 않는 것은 법관들이 태만한 결과입니다. 학교에는 글 읽는 소리가 없고 전야(田野)에는 놀고먹는 백성들이 많으며, 온갖 일이 해이되고 풍속이 나빠지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은 데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근면이라는 것은 수고로이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서(尙書)》에는 이르기를, ‘너의 높은 관리들에게 경계하노니 공로를 높이는 것은 뜻에 달린 것이요, 위업을 넓히는 것은 근면에 달린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제왕들의 근면은 관리들이 수고로이 힘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을 구하는 데 힘쓰며 인재가 얻어진 다음에는 모두 내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나랏일이란 하루에도 만 가지를 처리해야 되는 데 인재를 얻어 적절한 벼슬에 임용해 놓으면 신하 스스로가 아래에서 수고하므로 임금은 위에서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요(皐陶)의 노래에는, ‘임금이 모든 일을 다 맡아보니 고굉지신(股肱之臣)들은 게을러져서 만사가 그르쳐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맡아본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이 근면한 듯하지만 신하가 게을러지고 일이 그르쳐집니다. 근면하기는 마찬가지나 그 결과는 이처럼 상반되는 것입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직접 계(啓)를 꼼꼼히 살피고 수(隋) 나라 문제(文帝)가 직접 호위 군사들에게 밥을 먹인 것으로 말하면 해당 관청에서 할 일이었지 제왕이 수고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 폐하께서는 황위에 오른 이후 놀며 편안하게 즐긴 적이 없고 음악과 여색을 즐긴 적도 없으며, 날 밝기 전에 옷을 입고 정사를 보러 나가고 날이 저물어서야 밥을 들면서 날마다 바쁘게 지냈으니,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임금입니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하찮은 일들까지 살폈고 근심이 깊어서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여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였습니다. 하찮은 일들까지 살폈기 때문에 큰 원칙이 혹 허술해졌고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참소가 쉽게 들어왔습니다. 큰 원칙이 허술해지니 소인(小人)들이 폐하를 기만하게 되었고, 참소(讒訴)가 들어오니 대신들이 자주 교체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석공(石工)이나 목공(木工)의 권한까지 쥐고 나면 아래서는 밭 갈고 길쌈하는 노비의 직분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일을 주관해야 할 모든 신하들이 형세상 제한을 받게 되어 감히 일손을 잡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전형을 맡은 관리들이 명령만을 기다리게 되고 법을 맡은 관리들도 명령만을 받들게 되니, 임금의 팔다리 노릇을 해야 할 관리들이 어찌 게을러지지 않으며 만사가 어찌 그르쳐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것을 놓고 감히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면의 마땅한 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오로지 어진 사람을 구하는 것일 따름이니, 명철한 폐하는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폐하는 공정한 것을 좋아하나 조정에는 사욕이 넘쳐나고 관리들 간에는 당(黨)이 갈라졌으며, 벼슬을 얻어 나가려는 자들은 대궐 안의 응원 세력과 결탁하고 세력을 끼려는 자들은 외세에 의지합니다. 재주도 없이 턱없는 벼슬을 지내는 것은 모두 세도 있는 집안의 인척들이고 죄를 지고도 요행수로 면하는 것은 모두 권세 있는 가문의 청탁의 결과입니다. 임용해야 할 벼슬 자리가 있으면 비천한 자들을 사대부들보다 먼저 앉히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도적보다 심하게 빼앗아 냅니다. 천하에 능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사사로운 일을 이루는 것 한 가지뿐이니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폐하(陛下)의 공정함이 진실한 공정함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공정함이라는 것은 천리(天理)의 바른 것입니다. 추호도 욕망의 사사로움이 없어야 그것을 공정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드문 큰 공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극히 은미한 본심을 보존하기는 어렵고, 중국이 오랑캐들을 내쫓기는 쉽지만 자기 한 사람의 사사로운 욕심을 없애기는 어렵다고 한 선현의 말은 매우 크나큰 경계로 삼을 만합니다. 모르기는 하겠지만 폐하께서는 한가로이 홀로 있을 때나 조용히 사물에 응할 때 과연 마음속에 공정함만 있을 뿐 추호라도 욕심의 싹이 없었습니까? 이것은 폐하만이 혼자 알 수 있는 것이지 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정령(政令)과 하는 일들로 미루어 폐하의 마음을 더듬어 보면 순전히 공적인 마음에서만 출발한 것이 아닌 것도 있는 듯합니다.
경장(更張) 이후에 이른바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의 구별이 있었지만, 한 사람도 위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의 조지(朝紙)를 보니, 칙임관·주임관·판임관의 벼슬이 매번, 가까이 돌면서 사적인 총애를 받거나 점쟁이나 이단(異端)의 무리들에게 내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두 무리들 중에도 어찌 등용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야 하겠습니까만, 아직 명철하고 너그러운 임금들치고 이 무리들에게 높은 총애와 신임을 베푼 임금은 없었습니다. 대체로 이 무리들로 말하면 안팎으로 연계를 맺고 어디에서나 구애받지 않으며 간사한 술법을 숭상하여 심지가 간교한지라 안으로는 남을 헐뜯고 시비를 전도하며 밖으로는 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권세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이익을 좋아하고 염치없는 시속 무리들이 앞을 다투어 추종하며 저마다 아부하여 편당을 만들고는 자기들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쫓아내게 됩니다. 그 형세가 필경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야 말 것이니, 어찌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중앙과 지방의 높고 낮은 관리들은 태반이 지조가 없고 턱없이 벼슬을 차지한 자들입니다. 약간이나마 염치가 있고 조금이나마 절개를 지닌 사람들은 임용되자마자 바로 쫓겨나고 벼슬에 나서자마자 물러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폐하의 공정한 마음을 헤아려서 왔다가 나중에는 이 무리들의 배척을 받고 가버립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저물녘에는 편히 쉬고 아침이 밝으면 정사를 보는 자리에 나가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면류관(冕旒冠)을 바로 쓰고 남면(南面)하여 앉아 너그러운 마음과 편안한 몸으로 하루에 세 번씩 어진 관리들을 접견하여 위로는 당요(唐堯)와 우순(禹舜)의 도리를 논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곤궁을 걱정하였는데, 말하는 것이 공정하여, 임금의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훌륭한 임금이 마음을 닦아 훌륭한 정사를 이룩하는 방도입니다.
대궐 안의 일은 알아서 안 될 일이기 때문에 신이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만히 듣건대, 폐하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므로 아침 어선(御膳)을 들자마자 벌써 날이 저물어 버린다고 합니다. 대궐문이 열리면 행랑(行廊)이 마치 시장 같아지고 항간의 잡된 무리와 시골의 부정한 무리들이 밀치며 꼬리를 물고 달려들어서는 폐하 앞에서 버릇이란 전혀 없이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니, 말하는 것이란 무엇을 꾀하는 것이며 도모하는 것이 무슨 일이겠습니까?
폐하를 보좌하여 일을 주관해야 할 높은 관리들과 폐하를 위해 생각도 하고 논의도 해야 할 경연(經筵) 신하들은 해가 지나도록 폐하를 만나 뵙지 못하고 그저 문서나 받아 처리하며 녹봉이나 축내면서 구차하게 벼슬 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판이니 그 속에서 나오는 계책과 온 나라에 시행되는 정사가 과연 공정한 것이겠습니까, 사적인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명철한 임금이 정사를 베푸는 원칙에 손상을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옥체를 조섭하는 도리에도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정사의 도리에 마음을 집중하고 옛 문헌들을 널리 보았으므로 옳고 그른 것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든가 정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과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사적이라든가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까이에서 맴돌며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이 조정의 벼슬을 널리 차지하고 불순하고 이단을 숭배하는 자들이 대궐에 드나드는 것이 폐하의 덕에 누를 끼치고 성세(盛世)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쓸모가 있어 없애지 못하는 듯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정사가 뜻대로 되지 않고 여러 번 난리를 겪고 나니 조정의 신하들의 용렬함을 굽어보다가 귀찮다는 마음이 생기고, 변란이 끝없음을 깊이 걱정하다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마침내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두고 계책과 술법을 쓰는 자들을 은밀히 찾아 위급한 난국에 대처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폐하(陛下)의 생각이 이런 데서 나왔다면 그것은 더구나 공정한 도리가 아닙니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가없이 광대하고 임금이 비길 데 없이 높은 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늘이 사사로움을 덮어 주는 것이 있다면 덮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크지 못할 것이고 땅이 사사로이 싣는 것이 있다면 싣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넓지 못할 것이며, 임금이 사사로이 총애하는 것이 있다면 총애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높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벼슬을 맡기며 마음을 터놓고 공적인 것을 시행하며 누구나 똑같이 어질게 대하고 누구나 다같이 전심으로 대한다면 조정의 모든 관리들이 어찌 폐하의 팔다리 노릇을 하지 않고, 온 나라 군사와 만백성이 어찌 폐하의 자식 노릇을 하지 않으며, 불행하게 위태로운 때를 만난들 어찌 폐하를 위해 한 목숨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도모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오래 나가면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은 몇 안 되고 나머지는 모두 먼 사람이 될 것이니, 폐하의 소유가 어찌 적어지지 않겠으며 폐하의 형세가 외로워지지 않겠습니까? 저 이른바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이란 역시 어려운 때에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공적인 도리를 널리 시행하여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을 내쫓고 인망 있는 사람을 널리 등용하여 벼슬 자리에 배치하소서. 무슨 일을 위하여 대책을 세울 때에는 조정에 묻고 개인들과 의논하지 말며, 관직을 맡기기 위해서 인재를 선발하는 경우에는 벼슬에서 물러난 지조 있고 충직한 선비들 속에서 구할 것이요 연줄을 대어 결탁하는 간사하고 부정한 무리들 속에서 찾지 말 것입니다. 하늘이 준 지위와 직책을 어진 사람들과 함께 지켜 나가며 감히 사적인 은혜를 베푸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면 해와 달이 다시 빛나고 만방이 다 우러르고 조정이 깨끗해지고 온 나라가 기뻐 감복하여 임금의 교화가 크게 시행될 것이니 폐하께서는 살피소서.
지금 폐하께서는 신의를 좋아하지만 좌우 신하들은 속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중앙과 지방에서는 유언비어가 떼지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애통해 하는 조서(詔書)를 여러 번 내렸으나 온 나라가 감격하는 효과가 없고 엄격한 칙서(勅書)를 자주 내렸으나 탐오배들이 조심하는 기미가 없습니다. 심지어 도적 떼가 교화를 해치지만 토벌하고 무마할 방책이 없고 외교에 있어서는 신망을 잃어 온갖 비난을 다 듣고 있으며 무지한 자들에 대한 교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불의한 자들의 화가 당장 들이닥칠 형편입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신의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신의라는 것은 성의이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며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의 도리가 서지 못하고 신의가 없으면 하늘의 도리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신의가 없으면 제 몸도 수행할 수 없으며 신의가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먹을 것을 버리고 군사를 버릴지언정 신의는 버리지 않으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하늘은 순응하는 자를 돕고 사람은 신의 있는 자를 돕는다. 신의를 실천하여 순응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하늘이 도와 그 운수가 길하여 돕지 않는 것이 없이 길해진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신의에 관한 도리는 큰 것입니다. 위후(魏侯)는 나라를 세웠지만 한 번 사냥하기도 한 우인(虞人)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고 상앙(商鞅)은 법을 고치면서 세 장(丈) 짜리 나무부터 세웠습니다. 전국(戰國) 시기 나라의 패권을 위한 술책에 있어서도 신의를 잃고서는 정사를 해낼 수가 없었는데, 더구나 제왕(帝王)의 도리인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가만히 보건대, 폐하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말을 가지고 하지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나 신의가 적게 미칩니다. 조서나 칙서(勅書)를 내릴 때마다 신의를 다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물러나서 그것이 시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도 착실하게 실천되는 일이 없습니다. 대궐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외람되고 잡된 무리들은 쫓아낼수록 더 나오고 잡세(雜稅)를 폐지한다고 말하지만 강제로 긁어내는 관리들이 소환되었다가는 곧바로 또 파송됩니다. 탐오를 징계한다고 이르지만 관청에서 규탄하는 계(啓)를 올리면 덮어두고 내려 보내지 않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핀다고 이르지만 대책을 조사해 올리면 덮어두고 묻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해 벼슬을 고르다 보니 대신(大臣)이나 협판(協辦)을 장기짝 옮겨 놓듯 교체하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데로 따르다 보니 관찰사(觀察使)나 군수가 여관집에 다니듯이 오고 갑니다. 직제(職制)는 어제 변경시켰는데 오늘 또 고치고 법률은 중한 쪽으로 쏠렸다가 경한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조정의 명령이 어떻게 신의를 보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관직 제도가 너무나 복잡합니다. 탁지부가 있는 이상 내장원은 둘 필요가 없는 것이며, 군부(軍部)가 있는 이상 원수부(元帥府)는 승격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외부(外部)가 있는 상황에서 예식원(禮式院)은 또 무엇 때문에 설치하며, 경무청(警務廳)이 있는 상황에서 경위원(警衛院)은 또 무엇 때문에 더 둡니까? 법부가 존재하는 만큼 온 나라의 형벌에 관한 정사를 전일적으로 보아야 하겠는데 군법원(軍法院)에 권한을 나눠준 것은 무엇 때문이며, 궁내부(宮內府)가 있어 대궐 안의 정원을 몽땅 관할하는데 비원(祕苑)을 별도로 세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성부 재판소(漢城府裁判所)가 권한을 독차지한 상황에서는 경윤(京尹)은 필요 없는 관리이고,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이 겸직(兼職)인 이상 법관은 전임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틀어 보건대 한 번은 나누었다가 한 번은 합하고 한 번은 없앴다가 한 번은 두는 것이 모두 법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법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고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가 결국 망할 것인데, 이것은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폐하는 오랜 도리를 가지고 정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어진가 어질지 못한지를 환히 꿰뚫었고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벼슬길에 나오기는 어렵고 악한 사람이 승진하기는 쉬웠으니, 이것을 놓고 보면 폐하의 마음이 남에게 믿음을 보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등용하지 못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내쫓지 못한 것은 바로 곽공(郭公)이 망한 까닭이니, 이것은 남이 권해서 될 일이 아니라 폐하 자신이 힘써 해야 할 일입니다.
외교의 경우에는 더구나 신의가 중요합니다. 항간의 보통 사람들도 신의가 없이는 교제를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나라와 나라 간에 교제를 하는 경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세계가 어지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한국(韓國)은 피폐하여 무력과 재력을 가지고서는 물론 겨루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지켜야 할 것은 신의뿐인데, 신의란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저들이 저들의 강함을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의리(義理)를, 저들이 저들의 부유함을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인애(仁愛)를 가지고 우리 자신이 우리 일을 시행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의지하는 마음을 없애 버린다면 진(晉) 나라와 초(楚) 나라가 강하기는 하였지만 추(鄒) 나라와 노(魯) 나라보다 더 강하지는 못한 것처럼 될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삼천 리 강토와 500년 왕업을 가지고 가만히 앉아 독립 자주권을 잃고 있으며, 세력을 믿고 달래며 위협하는 자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습니다. 북쪽 나라에서 오면 북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이권을 경중도 헤아려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동쪽 나라에서 오면 동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주권을 존망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날마다 치욕을 당하지만 감히 막지 못하고 강요가 끊임없건만 감히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는 장차 국내 정사와 대외 실무가 모두 남에게 넘어가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이 근원을 따져 보면 신의가 서지 못한 데 있습니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권세 높은 사람이 재능에 관계없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면 백성들이 본업을 저버리고 외세를 구한다.’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을 놓고 보면 이 말이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폐하께서 깊이 살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라가 빈한하기 그지없지만 탁지부의 연간 수입이 그래도 6, 7천만 민(緡)은 됩니다. 참으로 신의 계책을 써서 우선 내장원을 없애며 탁지부에 소속시키는 동시에 각궁(各宮)과 내수사(內需司), 훈부(勳府) 등의 저축까지 합하면 거의 수 억만 민은 될 것입니다. 옛날 영조 대왕(英祖大王)은 양역(良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하여 함께 각궁에서 사적으로 받는 세금을 모두 거두어 균역청(均役廳)에 넘겨 삼군영(三軍營)의 비용에 보태게 했는데, 백성들이 지금껏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만일 조종(祖宗)의 뜻을 체득하여 절약해 쓰며 신의를 베푼다면 수 천만의 군사를 키우고도 남을 것이니, 한 필지의 토지나 한 부대의 군사보다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예를 연마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가르치면 무엇을 지킨들 고수하지 못하겠으며, 누구와 싸운들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나아가서는 여러 나라들과 패권을 다투고 물러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강토를 보위할 있을 것입니다. 안에서 재물을 저축하면서 무익한 소비를 없애는 것이 밖에서 나라를 위축시켜 망국의 화를 재촉하는 것에 비해 그 이해 관계가 어떠하겠습니까? 재물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군사를 강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형편이 이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겠습니까?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 인재가 없다고들 하는데 과연 한국에 인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어리석어 죽을 죄를 짓고 있지만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한 것이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가 한 번 신의를 세우기만 하면 위에서 말한 청렴과 근면, 공정 세 가지가 애쓰지 않아도 절로 시행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고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하였으며, 또 ‘쉽게 수락하는 말에는 틀림없이 신의가 적고 자꾸 고쳐 말하면 반드시 일이 잘 되기 어렵다.’ 라고 하였습니다. 폐하는 늘 말을 곱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말에 신의가 없고 또 늘 쉬이 수락하였다가는 번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의가 적고 잘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반드시 먼저 마음속으로 이 일이 청렴한 것인가 탐욕스러운 것인가, 근면한 것인가 게으른 것인가, 공정한 것인가 사사로운 것인가를 요량해 보고 청렴한 것이면 나아가고 탐욕스러운 것이면 물리치며, 근면한 것이면 힘쓰고 게으른 것이면 경계하며, 공정한 것이면 시행하고 사사로운 것이면 그만두면서 한결같이 신의를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정사가 잘 되지 않고 나라가 진작되지 못하며 재력이 넉넉해지지 않고 군사가 강해지지 못하여 주변 나라들이 불복한다면 신을 기만한 죄로 처단하소서.
아!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믿어 준 다음에야 간하는 법이다. 그 임금이 믿지 않으면 자기를 헐뜯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가까운 처지도 아닌 데다 하찮은 사람으로서 폐하에게 믿음을 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그저 바른 말을 해야 하는 직임에 있다는 이유로 감히 폐하의 높은 위엄을 범하며 남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틀림없이 비방하였다는 의심이 초래되어 분수를 어긴 죄에 대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신의 허리가 작두에 잘려도 부족하고 신의 목이 도끼에 찍혀도 모자라리라는 것을 제 자신이 잘 알면서도 감히 이처럼 망령된 말을 하면서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어찌 정신병에 걸려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이처럼 위태로운 때에 폐하가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써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근본으로 삼으리라 마음먹고 여러 신하들이 간하지 못한 데 대해 추궁하였으니, 이야말로 어지러운 것을 싫어하여 잘 다스릴 것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안정으로 전환시켜야 할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숨김없이 모두 말하였는데, 대체로 새로운 정사에 만 분의 일이나마 보탬이 될 것을 기대한 것이지 자신에게 미칠 화나 복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의 마음을 살피시고 만일 티끌만큼이라도 비방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면 당장 처단함으로써 공경치 못한 신하들을 경계시키소서. 그러나 만일 충성하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은 것이라면 부디 살펴보고 채용해서 시행하소서. 신의 몸이 주륙을 당하더라도 드린 말씀이 시행된다면 신은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겠지만 혹시 덮어둔 채 살피지 않아서 마치 전날에 신하들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을 때처럼 죄도 주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신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남을 것이고 또 그것은 폐하가 아랫사람을 신의로 대하는 도리도 아닐 것입니다.
오로지 명철한 폐하의 재결(裁決)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이 지내는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의 벼슬을 속히 체차(遞差)하심으로써 죽어 고향에 묻히려는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말은 물론 옳다. 그렇지만 시의(時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원본】 48책 44권 50장 B면
【영인본】 3책 332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왕실-국왕(國王) / *재정-잡세(雜稅)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재판(裁判)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재정-국용(國用) / *인사-임면(任免)
【원문】
竊伏見五月二十一日勅諭下者, 煌煌五百八十六言, 反復丁寧, 嚴正惻怛。 其所以反躬自責, 飭勵群工, 如日月之明, 如金石之固。 遠述堯、舜、禹典謨之遺則, 而詳密過之; 近紹先聖祖傳授之心法, 而節目備矣。 就其中御書八字, 益伏見五十年聖學中所深得而道出來者。 自古, 聖帝、明王治天下之大經、大法, 賢臣、碩輔佐天子之嘉謨、嘉猷, 不外乎是矣。 蓋廉者, 義禮之方也; 勤者, 知行之勇也; 公者, 仁之大德也; 信者, 德之所以立也。 橫看則孟氏之四端也, 竪看則《中庸》之三德也。 苟非人欲淨盡、天德昭曠, 何能到得此也? 臣雙擎九頓, 伏讀仰歎, 於乎大哉! 於乎一哉! 行此四者, 五帝可六, 三王可四, 第五倫之一見決聖, 臣亦云也, 將見山東父老奉天、悍卒懽欣而流涕矣。 爲陛下之臣民者, 有不感激思效、仰體聖意, 而敢背四者之訓者, 無人臣之義也, 天必殛之。 然臣之愚忠, 猶有古人愛明主、慮治世之意, 敢以陛下之所責勵者, 反爲陛下仰復焉。 竊觀陛下自壬午以後, 數十年間, 有患難, 輒下明詔, 不知幾千百言。 而其哀痛惻怛之旨, 何嘗不如今日之切至也? 其所以責躬而勵下者, 亦何嘗不以廉勤公信爲期也? 而曾未幾時, 官吏之貪黷聚斂, 猶復前也, 庶事之怠惰恬嬉, 猶復前也, 法律之私枉不公, 猶復前也, 政令之翻覆無信, 猶復前也。 無一淬勵作新之效, 而世道之漸就汙陷, 如江河之日下, 玆曷故焉? 臣聞“以言感人者淺, 以心感人者深。” 言者, 心之聲也, 人心之動, 因言以宣。 故《易》曰: “同心之言, 其臭如蘭。” 又曰: “鳴鶴在陰, 其子和之。” 蓋謂言之出乎身而加乎民, 發乎邇而行乎遠也。 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也。 故君子言顧行, 行顧言, 言不顧行, 不如無言。 殷宗之恭默思道, 終能致中興之化; 楚莊之不飛不鳴, 猶能成五霸之業也。 竊恐陛下之所以感人者以言, 而不以心也。 人主之一心, 爲萬化之源。 心不純一, 則身亦不可修, 況於人乎? 況於天下國家乎? 臣何以知陛下之感人者以言而不以心也? 臣敢冒死而歷陳之。 夫下之從上, 猶影之隨形、草之偃風。 其上廉, 下孰敢貪; 其上勤, 下孰敢怠; 其上公, 下孰敢私; 其上信, 下孰敢僞? 今陛下好廉, 而朝廷之臣有簠簋不飾之羞, 郡縣之民多杼軸旣空之歎, 賄賂成市而官方淆濫, 貪虐充谿而盜賊繁興。 此其故何哉? 臣謂正由陛下實不留心於廉也。 何以知其然也? 夫廉者, 淸也, 儉也, 潔不濫濁也。 《漢史》曰: “寡廉鮮恥, 俗不長厚也。” 董子曰: “古之君子, 下高其行而從其敎, 民化其廉不貪鄙。” 繇是言之, 陛下之不留心於廉, 可知矣。 凡度支惟正之供, 皆陛下有也, 又何爲別設內藏院, 必使聚斂之臣主之, 一切公田、私土、陂池、魚鹽、蔘鑛之屬應入於度支者, 刮取而盡藏於是? 度支經用渴, 無以給科祿、餼料、興作之費, 則輒稱以內帑而貸充之, 又從而責其償有若國債焉。 近又取國內原野、山林、江海、堤堰、漁獵之可以開墾種植、擴張整理者, 而不歸之度支, 特稱御供院而管領之。 夫御供之重, 獨可以此等閒曠荒蕪廢棄之物而供之乎? 此皆示民以不廉也, 俗何以長厚, 民何以不貪鄙乎? 此外又有至不忍之事, 恐非陛下之所盡知, 而臣不敢不一陳於陛下也。 惟英親王, 陛下之愛子也。 人之愛其子, 聖愚之所同然, 而聖人之愛子也, 將以養其德而修其福, 愚人之愛子也, 欲以多其財而損其志也。 今英王尙未出閤, 而先設邸府, 便嬖貪侫之徒, 託以買置宮庄, 使者四出, 求索無藝, 膏腴遍國中, 稅斂達江河, 半歸私橐, 虛實未核。 被奪之怨, 勒買之訟, 所在聒耳, 人誰不歸怨於幼沖之地? 而悖入悖出, 人之常也。 此不但有損於陛下之廉德, 其於爲英王成就德性之道, 恐有妨也。 古之河間、東平, 必無是也。 陛下何憂乎英王之貧, 而一任奸細之賣弄如是乎? 臣切痛之。 臣願兩院亟令革罷, 其所有財政, 一歸於度支, 以示淸儉不濫濁之意; 若英邸事務, 亦令府官照察, 凡其莊園課稅毫涉民怨者, 一切罷之, 以明養德修福之意焉。 最是賣官一事, 實古今亡國之轍也。 漢之西苑, 晉之私門, 皆可驗矣。 陛下何忍躬駕而隨之乎? 夫內外百官者, 天職也, 王者之所共理天下者也。 是豈公然沽販之貨哉? 彼奸豪猾胥, 以其頑冥無恥之性, 敢生僥倖射利之計, 富者傾産, 貧者騙財, 先輸十倍之直, 賺得百里之任, 其意將爲公乎, 爲私乎? 其償負獲贏之方, 將於何取辦? 而其自到官之日, 孜孜爲之者, 將何事乎? 又有賂遺之私納, 節次續續, 無是則失其本矣, 如是而其爲政也, 果能廉乎, 貪乎? 是猶割人之赤子, 以奉其父母之左右而自噉其餘, 父母喜左右之飽而不救其赤子於刀俎之下也。 嗚呼! 爲陛下之赤子者, 獨不冤乎? 由是而盜賊搶刦, 公私蕩然, 贓逋踵生, 囹圄常滿, 府庫之支用恒絀, 兵校之勦討不勝, 張角、葛榮之亂, 已現其兆。 未知由來賣得之利, 足能充其費而止其禍乎? 今其利害得失, 果何如矣? 廷臣稍能解事者, 莫不憂歎, 而及其爲陛下謀者, 不過曰嚴贓律以徵逋也, 曰設方略以戢盜也, 未有一人爲端本澄源之論者。 問之, 則曰此難言也, 有若陛下眞樂乎此而非臣下之所能諫也, 是可謂陳善閉邪之恭乎? 臣竊爲陛下痛之。 幸而聖慮及此, 近云嚴塞, 而左右之失飽已數月矣, 又豈無巧言膚愬蔽聖聰、串政官而復蹈之乎? 惟在陛下一心純正, 確守明詔中‘廉’一字而已矣。 昔季康子問盜, 孔子曰: “苟子之不欲, 雖賞之, 不竊也。” 夫季氏者, 諸候之大夫也, 而不欲, 猶能止盜, 況天子一正心, 則其效何止於止盜而已乎? 惟聖明察之。 若夫土木興作之役, 雖有國之不可已者, 而一向無節, 亦足以亡國, 歷代前轍, 昭可鑑矣。 如宮殿、寢廟、祠壇、廨宇之歲久當葺者, 是所謂不可已者, 然亦宜度時量力, 以存節儉之戒。 若其離宮、別觀、淫祠、佛宇之屬, 無益於國, 有害於民者, 何可捐府庫之一金、費生民之一力哉? 竊觀陛下御極四十餘載, 絶無逸豫侈靡之好, 而獨於興作之事, 未嘗暫輟。 監董匠役之徒, 不離於禁中; 木石輸寫之車, 相屬於道路; 斤斸鋸斷之聲, 不絶於耳邊。 殊不知此皆不可已之役歟? 抑或可已而不已者歟? 嗚呼! 乙未之後, 車駕之移御於慶運宮, 卽一時處變權宜之擧也。 湫隘樸陋, 不能無略加葺理, 而其視越句踐之山棲、衛文公之野處, 亦已侈且大矣。 臣愚死罪以爲, 陛下苟有比灑復雪之志, 則帛冠布衣、臥薪嘗膽、生聚敎養等許多大事, 且將日不遑處矣, 奚暇爲經營構造、宴安粉飾之計哉? 何況景福、昌德兩闕, 卽我高皇帝定鼎之舊基, 列聖朝攸居之法宮, 在陛下復其位、踐其阼之義, 不宜久相離者乎? 惟此慶運宮, 粤我宣祖回鑾之日, 草創而臨御之, 蓋以兵燹之餘, 舊闕燒殘, 未及重建故也。 殿宇逼仄, 制度拙陋, 然終宣祖之世而不加改, 不惟聖祖之愛養民力有如是也, 時當創鉅痛深之際, 志存興復, 不遑於宮室之安也。 不然, 御玆十六年, 豈無修繕張大之力耶? 是所以光復舊物, 煦蘇瘡痍, 永垂我無疆之業。 今陛下之所創痛, 比宣祖何如, 而顧乃雍容暇豫, 留心宴安也哉? 不幸鬱攸之災, 適發於外兵入都之時, 竝與國家舊典、傳世寶器而一燒之, 此非小變也。 無乃天所以示警者歟? 政宜恐懼修省以謝天意, 卽日還御先王之舊居, 以行先王之舊政, 是天地神人之所共悅豫也。 竊聞陛下當火未滅之日, 而卽召匠役, 以謀重建, 此豈側身敬天之道哉? 方今財力之艱絀、時局之擾攘, 猶屬第二憂也, 惟恐天意人心, 有不順者矣。 《語》曰: “順天者興”, 順天之道, 無他焉, 在順人心也。 願聖明順人心以順天也。 且聞西京之役, 尙未訖, 而一路之民力先竭。 蓋是役也, 始於幺麽奸詭之物, 做出誕妄不經之說, 以欺至尊, 而爲憑託剝民之計也。 及其奸狀敗露, 罪合誅殛, 而當路諸臣又從而贊成之, 何也? 臣愚死罪, 不知西京之闕, 究有何益於國家? 而積民怨, 爲宮爲殿, 遠奉莫重之御容、睿眞而安其上, 抑何意也? 於古有此事否? 此亦不可以已者乎? 現今强隣之兵, 爭於境上, 而西京適在其衝, 將不知禍於何底。 臣願御眞亟令奉還, 簡其儀衛, 倍道上來, 恐不可緩也。 宮役則永令罷之, 以紓西民之力焉。 且今京外新造之佛宇淫祠, 臣實不知幾何, 而悉皆虛縻經用, 徒煩民力, 利歸奸人而害及國家者也。 一竝廢止, 已建者撤之, 將建者罷之, 使四方之民, 曉然知聖意之實不樂此焉。 蓋土木興作, 由於不師儉也, 不儉, 則非廉也。 當此匱乏之時, 荐之以饑饉, 加之以師旅, 又從以役民, 實恐大有損於陛下之廉德。 臣敢索言之不已, 惟聖明察之。 今陛下好勤, 而朝著有恬嬉之習, 庶事無成就之期。 政府之會議, 纔聚而旋散; 各部之課仕, 屢飭而多闕。 守令有缺而經歲未差, 銓臣之怠歟? 罪囚在獄而閱序不決, 法官之慢歟? 學校絶絃誦之聲, 田野多遊食之民, 百隸之懈怠, 風俗之媮惰, 日以益甚, 此其故何哉? 臣恐陛下之勤, 有失於當勤之道也。 何以知其然也? 夫勤者, 勞力也。 《書》曰: “戒爾卿士, 功崇惟志, 業廣惟勤。” 蓋帝王之勤, 有異於卿士之勞力。 故勤於求賢, 逸於得人。 天下之事, 一日萬機, 苟得人而任其職, 臣自勞於下, 而君可逸於上矣。 皐陶之歌曰: “元首叢脞哉, 股肱惰哉! 萬事墮哉!” 叢脞者, 細碎之謂也。 細碎者, 有似乎勤, 而其臣則惰, 其事則墮。 同一勤也, 而其效之相反, 乃如是也。 秦皇之衡石量書, 隋文之衛士傳餐, 乃有司之事, 非帝王之勤也。 猗歟! 陛下臨御以來, 無盤遊之樂, 絶聲色之娛, 宵衣旰食, 日不暇給, 誠天下之誼主也。 但憂之過而察及細務, 慮之深而惡人自專。 察之細, 故大體或踈; 惡其專, 故讒間易入。 大體疎, 則小人之欺罔至; 讒間入, 則大官之遞易數: 是所謂叢脞也。 上執琢玉、斲木之權, 下失奴耕、婢織之職, 百執事之臣, 形格勢阻, 莫敢着手。 當銓選則待書下, 掌刑獄則奉旨意, 股肱安得不惰哉? 萬事安得不墮哉? 臣於是敢謂, 陛下之勤, 失當勤之道也。 當勤之道者何? 求賢是已。 惟聖明察之。 今陛下好公, 而朝廷之上, 私欲滔天, 縉紳之間, 偏黨分岐。 媒進者, 結託奧援; 要挾者, 憑依外勢。 匪材濫職, 盡是世族之姻婭; 有罪倖免, 皆由權門之干囑。 有官當差, 則傔隸先於士夫; 有利可得, 則攘奪甚於寇盜。 天下之能事, 惟‘私’一字而已, 此其故何哉? 臣恐陛下之公, 非實心之公也。 何以知其然也? 夫公者, 天理之正也, 無一毫人欲之私, 然後斯可謂公也。 先賢所謂“不世之大功易立, 而至微之本心難保; 中原之戎虜易逐, 而一己之私欲難除”者, 甚可畏也。 第未知陛下於燕閒蠖濩之中、淸明應物之地, 果能純於公而無一毫人欲之萌乎? 此則陛下之所獨知, 而非臣之所得與也。 然而竊以政令事爲之發於外者, 有以揣聖心, 或不能粹然一出於公也。 夫自更張以後, 有所謂勅、奏、判任之別, 而無一不承順上旨者也。 竊觀近日朝紙, 勅、奏、判任官之除, 每下於近習私昵、卜祝左道之流者, 何也? 此輩中, 亦豈曰全無可用之人, 而明王誼辟, 未嘗有尊寵信任之者, 蓋以此輩關通內外, 蹊徑無礙, 崇信邪術, 志嚮祕詭, 內之可以行毁譽、眩是非, 外之可以立門庭、招權勢。 於是流俗之嗜利無恥者, 爭相趨附, 競爲阿黨, 排擯異己, 斥逐忠賢, 其勢必至於亡人之國而後已也, 可不戒哉? 今內外大小官人, 太半奊詬冒濫之徒, 若其粗具廉恥、稍持風節者, 或乍除而旋逐, 或暫進而因退者, 始因陛下之公心而來, 終爲此輩之所軋而去也。 古之聖人, 嚮晦宴息, 朝氣淸明, 廣廈細旃, 肅嚴靜整, 凝旒面陽, 心廣體胖; 賢士大夫, 晝進三接, 上言唐、虞之道, 下念民生之艱。 所言者公, 王者無私, 此乃聖王所以養心出治之方也。 宮省事禁, 臣未詳知, 而竊聞陛下向晨入寢, 過午而興, 朝膳纔御, 日已昃矣。 修門下鑰, 永巷如市, 閭里猥雜之類、鄕曲魀之蹤, 肩磨踵接, 瞬目恣睢, 更進迭退於至尊之前, 所言者何謀, 所圖者何事? 至於宰輔執事之官、經幄論思之臣, 終歲而不見天顔, 惟奉行文書, 尸素苟充而已。 如是而謀猷之出於其中、政令之行乎四方者, 其果公乎, 私乎? 若是者, 不惟有損於明主致政之體, 亦將有妨於聖人節宣之方。 臣甚憂之。 臣竊料陛下潛心治道, 博觀古典, 其於是非公私之辨、治亂興亡之跡, 察之熟矣。 豈不知近習私昵之布列朝端、淫邪左道之出入禁密, 有累於聖德而非盛世事乎? 然猶若有所使而不能自已者, 何也? 得非治不徯志, 屢經禍亂, 俯察乎廷臣之庸碌而生厭薄之心, 深念乎禍變之無窮而有疑懼之情, 遂欲廣置親昵、密訪術數, 擬爲急難之用歟? 陛下之慮, 或出於此, 則尤非大公之道也。 夫天地之所以廣大無外、人主之所以尊而無對, 以其無私也。 若天而有私覆, 則有所不覆, 而爲不大矣; 地而有私載, 則有所不載, 而爲不廣矣; 人主而有私比, 則有所不比, 而爲不尊矣。 苟能擇賢任能, 開誠布公, 一視同仁, 咸得其心, 則朝廷百官, 孰非陛下之四體? 六軍萬姓, 孰非陛下之赤子? 而不幸遇難, 孰不爲陛下捐軀者乎? 此之不圖, 而顧彼之久行, 則親昵者無幾, 而餘皆疏遠之人矣, 陛下之有, 不亦狹乎? 陛下之勢, 不亦孤乎? 彼所謂親昵者, 又非患難之所可恃者也。 伏願陛下恢弘公道, 屛斥私昵, 廣收人望, 列之庶位。 圖事揆策, 則詢于朝而不謀于家; 爲官擇人, 則求之恬退忠直之士而不求諸交通結託祕詭幽陰之類。 天位、天職, 與賢者共之而不敢爲私恩之資者, 則日月之更, 萬方咸仰, 朝廷淸明, 遠近悅服, 而王化大行矣。 惟聖明察之。 今陛下好信, 而左右之欺蔽成習, 中外之騷訛朋興。 哀痛之詔屢頒, 而朝野無激感之效; 嚴威之勅頻降, 而贓汙無警懼之實。 甚至群盜梗化, 而剿撫無方; 外交未孚, 而嘖言備至。 豚魚之化, 已矣勿論, 鯨鯢之患, 迫哉斯急, 此其故何哉? 臣恐陛下之信, 未及於民也。 何以知其然也? 夫信者, 誠也, 不疑也, 無差爽也。 人道非信不立, 天道非信不行, 非信無以修身, 非信無以爲國。 故孔子欲去食、去兵, 而不去信, 又曰: “天之所助者, 順也; 人之所助者, 信也。 履信思乎順, 是以自天佑之, 吉無不利。” 嗚呼! 信之道, 大矣哉! 魏侯建國而不失一會之期, 商鞅變法而先立三丈之木。 雖戰國之霸術, 猶不可以失信而爲政, 況帝王之道乎? 竊觀陛下所以御世者, 以言而不以心, 如上所云。 故信之及於物者, 亦淺矣。 每於詔勅之發, 未嘗不信誓朝朝, 而退而觀其行, 則無一事踐其實也。 有曰淸宮禁, 而濫雜之類, 愈斥而愈進; 有曰罷雜稅, 而討索之官, 旋召而旋送; 有曰懲貪墨, 而府彈則掩而不下; 有曰察民隱, 而覈案則置之不問。 爲人擇官, 則大臣、協辦遷易如奕棊; 循人所求, 則觀察、郡守往來如逆旅。 職制則昨變而今改, 法律則蹁重而踦輕。 如是而朝廷命令, 何以見信也? 且官職之複雜太多。 旣有度支, 則內藏院不必置也; 旣有軍部, 則元帥府不必崇也; 旣有外部, 則禮式院又何設也? 旣有警廳, 則警衛院又何加也? 法部在矣, 一國之刑政宜專, 而軍法院之分權, 何也? 宮內府在矣, 宮內苑囿盡管, 而秘苑之別立, 何也? 以至漢城府裁判所有獨權, 則京尹爲冗官矣; 平理院裁判長爲兼職, 則法官非專任矣。 總之, 一分一合, 一廢一置, 皆所以亂法也。 法亂, 則民不信; 民不信, 則令不行; 令不行, 則事不理; 事不理, 則國遂亡矣。 良由陛下之一心, 不足於信也。 陛下久道化成, 凡群臣之賢不肖, 靡不洞悉, 未嘗無善善惡惡之心, 而善者難進, 惡者易陞。 由是觀之, 陛下之心, 不惟不信人, 亦不能自信也。 善善, 而不能用, 惡惡, 而不能去, 郭公之所以亡也, 此非人之所能勸, 惟陛下之所自勉也。 至若外交, 尤貴乎信也。 雖委巷匹庶之倫, 無信不可以交人, 況國與國之交際乎? 今宇內紛爭, 我韓疲弊, 兵甲財力, 固不足以抗衡, 而惟所守者, 信而已。 信者, 自立也。 彼以其强, 我以吾義; 彼以其富, 我以吾仁。 吾行吾事, 絶畏怵依附之心, 則雖晉、楚之强, 不能有加於鄒、魯也。 顧以三千里之地、五百年之業, 坐失獨立自主之權, 甘聽倚勢誘脅之人。 北至則附北, 國之利源, 不擇輕重而與之; 東至則附東, 國之主權, 不念存亡而輸之。 侮辱日至, 而不敢禦; 要索無厭, 而不敢拒。 將至內政、外務, 一皆伺人之鼻息, 而國非其國也, 寧不痛哉? 究其源, 則信不立爲之祟也。 管子曰: “權重之人, 不論才能而得尊位, 則民倍本行而求外勢。” 以今觀之, 其言不已驗乎? 此誠陛下之所當深察也。 今國家誠貧矣, 而度支之歲入, 猶可爲六七千萬緡。 誠能用臣之計, 先罷內藏而屬之度支, 竝與各宮及內司勳府等藏而合之, 則殆可爲數萬萬緡矣。 昔我英祖大王, 爲除良役之弊, 而竝取各宮私稅而屬均役廳, 以補三營之需, 民至今賴之。 苟能仰體祖宗之意, 而用之以節, 行之以信, 則可以養數千萬兵而有餘矣。 其視一成之田、一旅之衆, 不旣多乎? 鍊之以技藝, 敎之以親上死長之義, 則何守而不固, 何戰而不勝? 進可以爭雄列國, 退可以自保疆場, 其與藏財於內而銷無益之費、蹙國於外而迫危亡之患者, 得失顧何如哉? 財可富矣, 兵可强矣, 而國勢之至此岌嶪, 誰之咎歟? 世之論者, 皆言韓無人也, 韓國誠無人焉。 臣愚死罪以爲, 不患國之無人, 而獨患陛下之心不足於信也。 惟陛下一立乎信, 則以上‘廉勤公’三者, 不待加勉而自行矣。 古人有言曰: “美言不信, 信言不美。” 又曰: “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陛下常欲美其言, 故言多不信; 又常輕諾而多易, 故寡信而多難也。 願自今凡遇事, 必先自度於心曰, “此事廉乎貪乎? 勤乎怠乎? 公乎私乎?” 廉則進之, 貪則退之; 勤則勉之, 怠則戒之; 公則行之, 私則已之: 一以信固守之。 如是數年, 而政不理, 國不振, 財不富, 兵不强, 而四隣不服, 臣請伏誣罔之誅矣。 嗚呼! 子夏之言曰: “信而後諫也, 其君未信, 則以爲謗己也。” 臣以踈逖之蹤, 卑鄙之分, 無所取信於聖主, 而徒以職在言官, 乃敢觸犯威尊, 言人之所不敢言, 必將自致謗訕之疑, 而不免於犯分之誅矣。 自知臣之胸, 不足以當椹質, 臣之吭, 不足以敵斧鉞, 而敢爲此狂妄之說而不知懼者, 豈病瘋而然哉? 當此危亂之時, 陛下旣有意於廉勤公信, 以爲安民之本而責群臣之不能導達, 此政厭亂思治、轉危爲安之機也。 故臣敢盡言之不諱, 庶冀萬一有補於維新之化, 而臣身禍福, 非所計也。 願陛下察臣之心, 若一毫出於謗訕, 則卽加誅戮, 以警人臣之不恭者; 萬一出於忠愛而不知有身, 則幸察納而致行焉。 身雖被誅, 言或得行, 則臣雖死猶生; 而抑或置之不省, 旣不罪之, 又不納之, 如向時寮臣之聯疏, 則不惟臣死有遺憾, 亦非聖主之所待下以信也。 惟聖明之裁幸焉。 仍伏乞臣之所帶中樞院議官之職, 卽賜鐫免, 俾遂首邱之願焉。
批曰: “言固然矣。 宜思時措, 爾其勿辭察職。”
【원본】 48책 44권 50장 B면
【영인본】 3책 332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왕실-국왕(國王) / *재정-잡세(雜稅)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재판(裁判)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재정-국용(國用) /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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