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順衛禦侮將軍副司猛廣州安公諱峋墓碣銘幷序
公의 諱는 峋이요 姓은 安氏요 貫은 廣州이니 大將軍 諱邦傑이 始祖요 累傳하여 諱綏 는 高麗朝 殿中侍御使로 廣州로부터 咸安에 奠居하니 지금 廣州를 貫으로 하는 子孫들은 모두 諱綏의 後이다.累傳하여 神虎衛中郞將兼閤門祗候 諱國柱는 父喪에 三年廬幕하고 麗亡에 託疾하여 節義를 지킨 事蹟이 咸安三鋼錄에 실렸으니 公의 五代祖라.高祖의 諱崗은 號가 騎牛子니 麗朝의 生員으로 朝鮮 太宗때 察訪으로 불렀으나 不就하였고 曾祖는 諱叔良으로 進士요 祖諱는 普文으로 朝鮮 成宗朝에 賢良科에 올라 社稷署參奉이요 金浦로 移居하니 密陽 入鄕祖라.考諱는 覯요 號가 苔巒이니 佔畢齊門人이요 燕山朝에 淸道郡守로 在任할 때 政事가 淸明하여 一邑이 크게 다스려져 나라에서 表彰하고 品階를 더하고 淸白吏로 記錄하였다.司諫으로 政事의 得失을 論辯하다 南原府使로 옮겼으나 淸廉 公平하여 고을에서 頌德碑를 세워 稱頌하였으니 그 事蹟이 輿地勝覽 淸道名宦錄 密陽誌에 실려 傳하며 妣는 淑人珍島金氏 司正 渚 의 女로 公은 燕山 丙辰一四九六年에 태어나 先代의 學德을 이어 宦이 副司猛에 이르렀고 密陽에서 昌寧으로 移居하여 明宗 丁巳一五五七年 八月四日에 棄世하니 享年이 六十二라. 墓는 昌寧郡 北道也洞 立巖麓卯坐요 公의 孫 餘慶이 撰한 碣銘이 있다.配는 淑人 昌寧 成氏 忠順衛 軼의 女로 直提學 思齊의 玄孫으로 壬子 一四九二年에 태어나 己亥 一五三九年 三月二十五日 公보다 十八年 앞서 棄世하니 享年이 四十八로 公의 墓後에 安葬되었다.膝下에 二男 二女를 두니 長에 應雲이요 次에 霽雲이요 女는 朴奎次와 李桂壽에게 각각 出嫁하였고 孫에 餘慶 承慶은 應雲出이요 弘慶 胤慶 興慶은 霽雲出이요 曾孫에 璹이요 玄孫에 盛漢 翔漢 彰漢 良漢 振漢 雯漢이니 璹의 出이요 그외는 多繁하여 記錄하지 않는다.月餘前 公의 十七代嗣孫 昌鉉甫가 廣州安氏副司猛公派宗會長 永煥氏와 그 族叔 在武氏와 함께 密陽文化院을 訪問하여 말하기를 十七代祖 副司猛公이 棄世한지 於焉 四百五十餘年이 넘었고 幽宅의 山勢가 險埈하여 여러 後孫들이 合謀하여 昌寧郡 大合面 主梅里 사지 後山 子坐 吉地에 緬禮하고 墓域에 儀物을 갖추어 後孫들의 龜鑑으로 삼고자하니 一言을 辭讓하지 말라고 하거늘 내 敢히 不文으로 이를 어찌 勘當하오리마는 固辭할 수 없어 위와 같이 略述하고 이어 銘하노니
火旺山 一脈을 바라보니 吉人의 幽宅이라 繼世簪纓이 滿譜하니 東邦華閥이요 文章과 學德이 鳴世하여 後世에 傳하니 이 앞을 지나는 者 公의 淸德을 銘心할 지어다,
二千十年 立春節
晉州后人 柳昌睦 謹撰
十七代孫 昌鉉 謹堅
忠順衛禦侮將軍副司猛廣州安公諱峋之墓
配淑人昌寧成氏祔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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