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경내로 접어들어 청류동천으로 오르다 보면 길가 주위의 바위에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부터 집안 어른들의 말씀으로 통도사 입구 어딘가에 나의 고조부이신 石荷 安鍾悳할아버지의 함자(銜字)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몇 번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를 못했다. 이는 아마도 石荷할아버지께서 1889년(光緖15年)梁山郡守 및 1894년(開國503年)蔚山都護府使로 재직하셨던 연유로 이곳 통도사 無風橋 입구의 바위에 銜字를 刻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틈틈이 통도사에 들러 각인된 바위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하다가 통도사에서 2016년 개산대제(開山大薺)를 맞아 경내 진입로 주위의 잡목을 베어 내면서 수풀에 가려져 있던 고조부의 銜字가 새겨진 바위가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커다란 자연석 바위에는 고조부를 비롯하여 安重植, 李宅器, 朴埰庠, 權寶善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이분들은 고조부와 同時代에 서로 交流 하셨거나 또 다른 緣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바위의 위치는 통도사 경내로 들어서는 무풍교를 지나 下馬碑에서 일주문으로 약 20미터 정도 가다 보면 길옆에 宋祥來와 李玗가 새겨진 집채만 한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李玗가 새겨진 바위 우측 약 10미터 위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아래엔 任洪淳, 橫山謙이란 커다랗게 새겨진 바위가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있을 수 없고 튼실한 뿌리에 든든한 줄기를 뻗어 무성한 잎을 가진 나무는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있듯이 아무리 바쁜 현대이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다.
고조부께서는 丁未年(一九0七)七月 二十九日 靑松客館에서 卒하셨으니 어느덧 死後 약 1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숭모의 마음은 변함없으리라.
▲下馬碑에서 약 20여 미터 경내로 오다 보면 우측 큰 바위에 李玗가 새겨져 있고 바로 앞 낮은 바위에 宋祥來라고 새겨진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 있으며 그 뒤에 큰 글씨로 任洪淳, 橫山謙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고 바로 뒤에 고조부의 함자가 있는 바위가 있다.
▲李玗가 새겨진 바위 뒷면이며 무풍교로 내려가면 下馬碑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주차장이다.
▲바로 뒤에 있는 바위가 고조부 외 4명의 함자가 새겨진 바위다.
▲牧隱 (이색)李穡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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