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그리운 얼굴)

樂園公諱璹墓碣銘(27世 諱璹)

쉬어가는 여유 2017. 9. 27. 14:01

樂園公諱璹墓碣銘

公姓安諱璹字待而樂園其號廣州後人大將軍邦傑乃其鼻祖而司諫院司諫覯之玄孫也司猛峋河陽訓導應雲生員玉川先生餘慶卽曾祖以下三世而本生考 贈參判光紹與玉川爲從祖兄弟也玉川學有深造大爲寒岡先生推詡亨于冠山祠者也妣密陽朴氏參奉洋之女隆慶壬申九月己亥公生十四通經史遊於寒岡之門壬辰癸巳連丁外內艱時在兵亂居喪惟謹人賢之丁酉倭再動公訪劉提督綎於沃野村提督奇之曰少年都是和氣有德之士也後在湖南之益山與天將唱和天將稱欽厚贐以文房之具離亂之間學益力敎授不倦南士多來聽講高參議敬祖曰靑年師丈白首門生乙巳陞上庠越五年己酉登第由著作博士歷司憲府監察慶尙都事刑曺正郞草溪永川二郡守至甲子七月十日卒墓在昌寧沙浦午向之山配玄風郭氏參奉再祉之女後公三十七年卒享年八十二祔葬于公塋公寛裕靜默甞與李爾瞻同在試院試罷爾瞻送人要見辭不徃爲本道都事時鄭仁弘張甚傳言以啗利公微晒而巳仁弘又請婚不許及守草溪求水菜吏例輸滿籠公命却之只饋一苞鄰邑之人設壽親宴冠盖傾一道公獨不助需又不赴爲江原道敬差官相朴承宗托其客與俱公不交言又不聽所求白沙李相公聞之曰安某心事人莫能及也癸亥改玉權凶被誅鄭愚伏先生首薦公曰北黨之所不汚南州之全名節也朝議方將顯擢而公巳圽命矣夫有六子二女盛漢翔漢彰漢良漢振漢雯漢二壻柳昔瑊朴文潜孫男八時泰時進時退時準時夏時行時耉時止時進時退聯榜生員時泰取從姪欽爲後欽有三子德亨義亨信亨德亨有三子允謙允禧允福信亨之子景漸以其從兄允謙之言持曾王考所撰狀錄來乞銘銘曰

繕工監役 驪州後人  李  瀷  謹撰




⊙안숙<安璹> (1572년(선조 5)~1624년(인조 3)

 

字는 待而. 號는 樂園. 本貫은 廣州. 벼슬은 형조정랑. 기개가 높고 문장이 탁월하였으며 임진왜란에 白衣로서 의병을 자원하여 忘憂堂 郭再祐 장군을 따랐는데 나이는 어렸으나 문장이 뛰어나 위에 올리는 글과 격문은 모두 할아버지께서 도맡아 지었다 한다.

 

1605년(선조 38)에 進士 시험에 합격하고 1609년(광해 원년) 增廣文科에 합격하여 刑曹正郞, 永川郡守, 草溪郡守, 慶尙道 都事 등을 역임하였는데, 光海君의 북당이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벼슬을 버리고 7년동안 집으로 돌아와 은거하시니 인조 임금때 정우복(鄭愚伏)과 이정구가 경연에서 제일 먼저 선생을 천거하면서 북당에 오욕되지 아니하고 그 이름과 절개가 완전함은 남주의 안모 한 사람뿐이라 하였다고 한다. 文集이 발간되어 전해오며 서문은 번암(巖)채제공(恭)이 撰하고 갈명은 성호(星湖) 李瀷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