紅流洞--金宗直--
홍류동에서
九曲飛流激怒雷(구곡비류격노뢰)
아홉굽이 세차게 흐르는 물 성난 천둥소리 같고
落紅無數逐波來(낙홍무수축파래)
수없이 많은 낙엽 도망가듯 물결에 실려 가네
半生不識桃源路(반생불식도원로)
반평생 알지 못하였네 무릉도원 길을
今日應遭物色猜(금일응조물색시)
생각컨데 오늘에야 자연의 경치를 만났구나
※沸流:세차게 흐름 ※激怒;몹시 성을 냄 ※雷:우뢰,천둥
※落紅:낙화.단풍이 떨어 짐 ※無數:수없이 많음 ※逐:쫒다.도망가다.달리다
※半生:반 평생 ※不識알지 못함 ※桃源:무릉도원의 준말
※今日:오늘.지금 ※應:응하다.대답하다.아마도 ※遭(조):(우연히) 만나다.당하다.두르다
※物色:자연의 경치.일의 까닭이나 형편
※猜(시):시기하다.혐오하다.의심하다.추측하다.헤아리다.미루어 생각하여 헤아리다.
■金宗直(1431~1492)
金宗直의 字는 계온(季溫), 號는 점필재(佔畢齋), 本貫은 선산(善山)이다. 김숙자(金淑滋)의 아들로 어머니는 密陽 朴氏이다. 1431년 6월 密陽府 西쪽 대동리(大同里)에서 3男 2女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숙자는 善山에 隱居한 길재(吉再)에게 性理學을 배우면서, 鄭夢周 - 吉再로 이어져 내려온 士林派 性理學의 도통(道統)을 繼承하는 기틀을 닦았다
1487년 全羅道觀察使, 1488년 工曹參判을 지냈고, 1489년 刑曹判書를 제수 받았으나, 身柄이 심해져 辭職을 하고 密陽의 옛집으로 돌아갔다가 이곳에서 1492년 6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著書로는 『점필재집(佔畢齋集)』·『유두유록(遊頭流錄)』·『청구풍아(靑丘風雅)』·『당후일기(堂後日記)』 等이 있으며, 編著로는 『일선지(一善誌)』·『이존록(彝尊錄)』·『東國輿地勝覽』 등이 傳해지고 있다.
中宗反正으로 신원되었으며, 密陽의 예림서원(藝林書院), 善山의 금오서원(金烏書院), 咸陽의 백연서원(柏淵書院), 金泉의 경렴서원(景濂書院), 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에 祭享되었다. 諡號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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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宗直의 碑文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 있는 김종직의 墓
▲합천 가야산 홍류동 계곡
▲紅流洞 溪谷 籠山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