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山 100選

해인사 소리길을 아시나요?

쉬어가는 여유 2012. 8. 27. 10:30

산행일시:2012년8월25일

코스:세계문화축전주차장~황산1구마을~소리길탐반안내소~무릉동~홍류동매표소~농산정~길상암~성보박물관~해인사

 

 

新羅時代 「孤雲崔致遠 선생이 老年을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 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伽倻山 海印寺 紅流洞 계곡에 2011년 9월 八萬大藏經 千年 世界文化祝展을 맞아, 홍류동 계곡길이 「海印寺 소리길」이란 이름으로 새롭게단장하고, 계곡을 따라 6㎞의 이야기가 있는 걷기 탐방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이정표상의 거리는 황산1구에서 해인사까지 7km라지만 팔만대장경 서고까지는 7km가 넘는것 같다. 홍류동 계곡은 가을 단풍이 매우 붉어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일 정도로 손꼽히는 가을 단풍 명소로, 伽倻山 19景 중 16景을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인사 소리길에 조성되는 10여개의 체험 프로그램은 「마음열기」를 시작으로「돌아보는 길」 「함께가는 길」 「침묵의 길」 「비움의 자리」 「명상의 길」 「마음 씻기」 「마음 전하기」등 복잡했던 일상을 잠시 잊고 마음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체험코스다.   수백년된 松林  속에서 뿜어나오는 신선한 공기와 웅장한 바위를 휘감아도는 淸雅한 물길과 웅장한 폭포, 산새 소리를 들으며 지친 마음을 씻어낸 뒤에 法寶寺刹 海印寺와 八萬大藏經을 만난다면 더 없이좋은 「깨우침의 길」이 될것이다. 체험구간은 3구간으로 나눠어져 있으며 제1구간은 소리따라 숲길따라 떠나는 홍류동 여행으로 구간은 무릉교에서4교량까지 약1.4km구간이다.제2구간은 고운 최치원선생의 발자취를 따라서이며 구간은 홍류문에서 길상암까지 약1.5km구간이다.제3구간은 홍류동계곡의 숨은 비경을 찿아서로 구간은 길상암에서 6교량까지 약0.6km구간이다.

각 지자체마다 수많은 길 이름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들이고 있는 이때 海印寺 소리길은 自然의 소리를 귀로 듣는 즐거움,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을 눈으로 보는 즐거움, 그리고 향긋한 솔향기가 코끝을 파고드는 후각의 즐거움, 그리고 명상할 수 있는 思索의 즐거움을 모두 갖춘  길이 아닌가 싶다.특히 이곳 홍류동계곡 약4km구간은 가을이면 단풍잎이 계곡물을 붉게 물들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을이며 수많은 관광객들로 人山人海를 이루기도 한다.

지금까지 해인사를 찿은 많은 탐방객은 차량으로 해인사 입구까지 들어가 해인사 경내를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지난해에 紅流洞계곡의 약7km구간이 각 沼와 潭을 배경으로 계곡을 넘나드는 운치있는 다리와 목조 데스크를 준비하여 아름다운 홍류동을 구경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절벽위에 아스라이 메달려 있는 寂滅寶宮인 길상암을 참배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을덧 하다.

지난 토요일 몇일전 합천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난 해인사 소리길, 출발지점인 세계문화축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출발지점인 황산1구마을 정자로 부터 해인사까지 약7km를 내자와 함께 거닐었다. 지난주 내린 많은 비로 계곡물은 넘쳐났지만 하류의 물은 아직도 조금 누런 황토빛을 띄고 있다.하늘은 잔뜩 찌푸려 한줄기 소낙비라도 내릴 기세다.하지만 소리길이라는 길 이름답게 계곡을 흘러 내리는 우렁찬 물소리,  매미소리를 듣다보니 7키로의 거리를 금새 종주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籠山亭은 孤雲 崔致遠先生의 발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덧 아름다운 경치에 걸맞는 정자가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한다.

이번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다시 한번 꼭 찾고 싶은 해인사 소리길 ,붉게 물든 단풍잎이 계곡물을 붉게 물들이는 그날 내 꼭 다시 찾으리라

                              籠   山   亭

何日文昌入此巒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 왔던가?

 

白雲黃鶴渺然間    힌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였도다.

 

已將流水紅塵洗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不必重聾萬疊山     만겹 산으로 다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孤雲 崔致遠선생은 부산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분이다 字는 孤雲이며 號가 海雲인데 海雲臺의 地名은 최치원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지명으로도 유명하다.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새로운 학문으로 무너져가는 신라를 일으켜 세우기위해 개혁정책을 실시하려 했지만 부패할대로 부패한 신라의 정치인들은 그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그래서 절망한 최치원은 홀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가 언제 죽었는지 알수가 없다고 한다.아마 이곳 紅流洞계곡의 농산정에서도 무너져 가는 신라를 바라보며 자신을 한탄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