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근처 조그만 암자에 사는 젊은 중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대상은 그 암자가 있는 마을에 사는 한 처녀입니다.
그 처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지겹도록 치근대는 중을 떼어 버릴 욕심으로 처녀는 중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 다리만들기 시합을 해서 스님이 이기면 스님과 결혼하고 스님이 지면 스님은
영원히 이 마을에 발을 들여 놓지 않기로 합시다."
스님은 당연히 그 내기를 받아 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는 약해 보이는 젊은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밤을 새워 가며 돌을 깎아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다리를 다 만든다음 낙동강에 물든 일몰의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옆을 쳐다 보니 어느새 처녀는 모든 일을 끝낸 뒤 낙동강물에
손을 씻고 있었습니다.
패배한 것을 안 스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낙동강에 뛰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죄책감을 느낀 처녀도 뒤이어 낙동강으로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마을사람들은 이를 기려 이 다리를 처자교,승교라 부르며 보존해 왔습니다.
또 다른 전설로는
삼랑진에는 "처자교"와 "僧橋"(중다리)라는 전설이 있었다.
삼랑진의 작은 절에 중이 살았는데 동네의 아리따운 처자(처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두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걸고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다리 놓기 시합을 벌였다.
중(僧)은 행곡천(杏谷川)을 건너는 "僧橋"를 맡았고 처자는 우곡천을 건너는 "處子橋"를 맡아 다리를 놓기 시작하여
처자가 먼저 다리를 완성하였다.
중은 자신의 교만과 게으름을 탓하며 서둘러 다리를 짓고는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처자교"와 "승교(중다리)"라 불러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명칭의 다리이름은 향토지인 밀주지, 밀주징신록, 교남지 등에 실려 있습니다.
한편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에는 작원관비각내에 세 개의 비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작원대교비로 1642년에 세워졌고 하나는 1690년에 세워진 작원진석교비입니다.
두 비는 모두 다리건립에 따른 내용이 적힌 비석이고 그 중 위 1690년에 세워진
비석에는 석교설치에 관한 유래가 적혀 있습니다.
위와 같은 경위로 설치된 다리는 예전에 부산 동래에서 서울로 가는 "영남대로"의
일부분이었으나 경부선 철로가 생기면서 낙동강유역으로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자연 잦은 낙동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처자교는 모래밑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처자교는 전설속으로 묻히고 말았습니다.
최근 4대강 사업에 따라 낙동강유역 정비 과정에서 전설로만 알려 졌던 처자교가 드러났습니다.
공사전에 삼랑진청년회에서 전설을 근거로 공사업체에 사실을 주지시키고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유물발굴과정에서 드러 난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돌로 된 쌍교이고 무지개다리 모양입니다.
이는 흔치않은 다리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에 삼랑진청년회는 이 유적을 보존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흔히 향토에 떠도는 설화나 전설을 옛이야기로 치부하기 십상입니다.
또한 옛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어른들도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번 유적의 발견으로 설화나 전설을 무작정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 설화나 전설은 그 자체로도 귀중한 유산이지만 대부분 근거 없이 형셩된 것이 아니고
분명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유적발굴로 드러났다시피 우리의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옛이야기를
확인하고 보존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중대한 문제는 현지 지방자치단체가 우선 조사 확인해야 할 것이나 그에따른
예산 또는 전문인력의 공급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지역의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문화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재가 공사기간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인하여 그대로 묻히거나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 조상의 남긴 흔적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시급하고 필요한 공사외에는 반드시 관련법규에 따른 절차와 연구에
맞추어 진행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과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문화유적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현재 발굴되어 있는 유물의 관리와 연구도 중요하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고 묻혀 있는
유적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그런 미발굴 미확인유적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처자다리 발굴의 예를 보더라도 미발굴유적조사 및 설화 전설 채록 작업도 아울러
병행하여 더이상 귀중한 문화유산의 상실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진 자료 제공 : 밀양시 홈페이지>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전설과 문화재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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