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을 잡아 먹으며 적과 싸웠으며 그 산짐슴들의 뼈가 사방에
널리게 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뼈재가 경상도 사투리로 빼재가 되었다는 설과 이를 한자 지명으로 표기할때
빼어날 수(秀) 자를 써서 수령(秀嶺)이 되었다고 함.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삼일동안 수도하여 마음을 딱은것이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백년 탐한 물건이 하루 아침에 띠끌이로다.
덕유산 장수사는 신라 소지왕때 창건하였다함 창건후 약200여명의 승려들이
상주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절로서 약10여채의 요사채를 가진 절이었지만
전란으로 인해 잦은 소실과 6.25전란때 불타고 말았다
현재는 일주문 만이 덩거러니 남아 당시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