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회우 (以文會友)
이문회우 (以文會友) - 글로써 벗을 모은다.
남산골 딸각발이 샌님처럼 골방에 처박혀서 바깥일은 등한시하고 궁상맞게 글줄이나 외우고 있는 것은 이미 악덕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비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몇몇 동학들과 함께 기생방은 출입할지언정 돈과 시정잡배를 멀리하고 고담준론을 입맷거리 삼아 안빈낙도하는 샌님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샌님은 더러운 돈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딸각발이 자존심 때문에 기생의 치마폭에 엽전을 던져 주어도 손으로 만지지 않고 젓가락으로 집어서 던져 주었을 정도로 돈을 멀리하였다. 그리고 친구와 만남을 위하여 술을 가까이 하였을 뿐 술을 마시기 위해서 친구를 함께 하지는 않았다. 결국 샌님이 벗한 것은 오로지 성현의 말씀이었고, 돈과 술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자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용한 가치를 지닌 친구를 얼마나 많이 사귀고 있는가에 따라 승패가 가름 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술과 골프로써 많은 친구를 사귀고 사업을 한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유용한 친구들을 관리하느라 술자리를 마련하고, 어렵사리 골프장에 주말 예약을 한다. 이러한 번다한 일상사를 매일매일 체크하며 스케줄을 만들고 그 스케줄을 따라 바삐 움직이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하다. 이러한 사람만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술과 돈, 골프와 같은 수단으로써 친구를 사귀는 이주회우(以酒會友)는 가능한 것일까?
공자님께서는 『논어(論語)』「안연편(顔淵篇)」마지막 24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문회우(以文會友)를 설명하셨다.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하여 인(仁)을 도움받는다.” 고 하였다. 증자는 돈과 술로써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글로써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는 자신의 덕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시속(時俗)에서의 친구 사귐은 술로써, 돈으로써 말미암는다. 이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를 잃는 것이다. 임시 먹기는 곶감이 달듯이, 재물과 술로써 사귄 친구는 나중에 화를 가져다 준다.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친구들은 메뚜기 튀듯 사라지고 만다. 술친구는 이익이 있을 때는 썩은 고기에 쉬파리 붙듯, 과자부스러기에 개미 꼬이듯 바글바글 끓는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친구는 이익이 사라지면 콩 튀듯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사업을 하던 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그 친구가 운영하던 회사는 재정이 건실하고 영업 이익이 많이 났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 못 가서 부도가 나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반지빠른 친구들이 회사 돈을 서로 빼돌려서 착복하여 횡령하는 바람에 결국 부도가 난 것이다. 미망인은 함께 사업을 하던 친구들에게 회사를 믿고 맡겼는데 결국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간담상조하며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었지만, 그들은 술과 돈으로 뭉쳐진 동료였을 뿐이었다. 부도가 난 회사를 수습하고 정리해서 유가족들을 보살펴주려고 노력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들 주인 없는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 던 것이다. 그 친구에게 있어서 글로써 사귄 믿을 수 있는 사업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을 미망인은 몰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업이라는 이익을 매개로 하여 만난 사람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증자(曾子)는 이를 갈파하고 글로써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고, 그 벗을 통해서 어진 덕성을 기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글로써 뜻을 같이하여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지우(知友)라고 부른다. 성현의 바른 마음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自他不二)’라는 상호 의존성과 동질성에 의해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친구의 고통과 즐거움은 자신의 고통과 즐거움으로 여긴다. 이러한 지우(知友)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더욱 가까이 다가와 준다.
증자의 이러한 가르침도 현대를 살아감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많다. 뜻이 통해서 친구로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많은 유용한 동료들을 요구하고 있다.그리고 유용한 동료들을 친구인 것처럼 관리해야만 한다. 이렇게 관리된 유용한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대중 속의 고독이라 할 수 있는 소외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 많은 유용한 동료 중에서 진정 대화하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친구는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쓸쓸한 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워 수첩을 꺼내어 전화 번호를 뒤적여봐도 한 명도 찾을 수 없을 때 정말 서글퍼지고 삶의 의미조차 상실하고 만다. 이럴 때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단 한 명만이라도 속내를 드러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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