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그리운 얼굴)

廣州安氏樂園公諱璹 할아버님

쉬어가는 여유 2012. 4. 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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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안숙(安璹)
    자 : 대이(待而)
    본관(本貫) : 광주(廣州)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605(을사) 진사시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군수(郡守)

    [가족사항]

    부(父) : 안여경(安餘慶)
    생부(生父) : 안광소(安光紹)
    처부(妻父) : 곽재지(郭再祉)


   ▲위치:경남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2012년3월1일 촬영) 父墓 우측 전답약20m위에 위치

 

⊙안숙<安璹> (1572년(선조 5)~1624년(인조 3)

 

자는 待而. 號는 樂園. 本貫은 廣州. 벼슬은 형조정랑. 기개가 높고 문장이 탁월하였으며 임진왜란에 백의로서 의병을 자원하여 망우당 곽재우 장군을 따랐는데 나이는 어렸으나 글이 뛰어났으므로 위에 올리는 글과 격문은 모두 선생이 도맡아 지었다 한다.

 

1605년(선조 38)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1609년(광해 원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형조정랑, 영천군수, 초계군수, 경상도 도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광해군의 북당이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벼슬을 버리고 7년동안 집으로 돌아와 은거하시니 인조 임금때 정우복과 이정구가 경연에서 제일 먼저 선생을 천거하면서 북당에 오욕되지 아니하고 그 이름과 절개가 완전함은 남주의 안모 한 사람뿐이라 하였다. 문집이 발간되어 전해오며 서문은 분암 채재공이 찬하고 갈명은 성호 이익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