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여행

二妓臺 갈맷길을 걷다

쉬어가는 여유 2018. 1. 2. 11:15


이기대()라는 명칭은 1850년 좌수사 이형하()가 편찬한 《동래영지()》에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記錄되어 있다. 또 이곳은 임진왜란 때 倭軍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祝賀宴을 열고 있을 때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뒤 끌어안고 바다로 투신하여 함께 죽은 곳으로서 이기대가 아니라 의기대()가 올바른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당시 두 명의 기생이 함께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경상좌수사가 두 명의 기생을 데리고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이는 진주성의 論介의 설화에도 왜장을 끌어 안고 투신 했다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나라가 어지러울땐 男女 구분 없이 草芥와 같이 자기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마음을 본받아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

깍아지런 절벽과 해안로를 따라 오륙도로 이어진 갈맷길에서 파도소리와 茫茫大海를 바라보며 戊戌年이 첫걸음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