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 --張裕釗(1823~1894.淸)--
農家夏日最奔忙(농가하일최분망)
여름날 농촌에는 매우 바쁜데
偶趁淸風追晩凉(우진청풍우만량)
짝을 따라 저녁 무렵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쫓는다
夜月柳陰人未寢(야월유음인미침)
달 밝은 밤 버드나무 그늘에 사람들 잠자지 않고
邨翁荒渺說隨唐(촌옹황묘설수당)
마을 노인들 느닷없이 옛 애기에 부화하네.
※奔忙:매우 바쁨 ※偶:짝.배필.허수아비 ※趁(진):쫓다.따르다.달려 가다.성급하다
※淸風:부더럽고 맑게 부는 바람 ※追:쫓다.이루다.잇닿다.그하다.채우다.
※晩凉:저녁 무렵의 서널한 氣分 ※※柳陰:버드나무 그늘
※未寢:잠자지 아니하고 ※邨(촌):시골.마을 ※荒:거칠다.덮다
※渺:아득하다.작다.아주 작다
※隨:따르다.추종하다.부화하다.좇다.추구하다.※說:말하다.이야기 하다.서술하다.
※唐:갑자기.느닷없이.당황하다.공허하다.저촉되다.
■張裕釗 (1823(청 도광 3)년 ~ 1894(청 광서 20)년 )
淸나라 湖北 武昌 사람. 字는 염경(廉卿)이며 號는 廉亭이다. 도광(道光) 26년(1836) 거인(擧人)이 되고, 내각중서(內閣中書)에 올랐다. 이후 官職에 나가지 않았다. 증국번(曾國藩)에게 修學했고, 금릉(金陵) 무정서원(文正書院)과 강한(江漢) 녹문서원(鹿門書院) 등 여러 서원의 주강(主講)을 지냈다. 허신(許愼)과 정현(鄭玄)의 훈고(訓詁) 및 정주(程朱)의 의리학에 침잠하여, 한학(漢學)과 송학(宋學)의 융합을 주장했다. 고문에 있어 만청(晩淸) 시대 대가의 한 사람이다. 저서에 『좌씨복가주고증(左氏服賈注考證)』과 『금문상서고증(今文尙書考證)』, 『염정문집(濂亭文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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