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日閑居 --李滉--
한가한 봄날에
不禁山有亂 (불금산유난)
산에 있어 혼란한 건 어쩔 수 없다만
還憐徑草多 (환연경초다)
논두렁길 많은 잡초 애처롭기 거지 없네
可人期不至 (가인기부지)
님은 약속하고 오질 않으니
奈此緣樽何 (내차연준하)
이런 까닭에 술단지를 어찌할꼬...
※閑居;한가하고 조용하게 사는 것 ※不禁:하지 멋하게 말리지 않음. 금할 수 없음
※還:돌아오다. 돌려보내다.※憐(연):불상히 여기다. 가엾게 여기다.
※徑:길. 논두렁길 ※可:군주의 칭호 ※不至:이르지 않았다.
※期:기약하다. 약속하다. ※奈:어찌. 대응하다. ※此:이에. 지금
※樽:술단지 ※緣:까닭. 이유
■李滉(1501~1570)
朝鮮前期 成均館大司成, 大提學, 知經筵 等을 歷任한 文臣. 學者로서 本貫은 眞寶요 字는 景浩이며 號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이다.
曾祖父는 선산부사 이정(李禎), 祖父는 진성군 이계양(李繼陽)[1424~1488], 父는 진사 이식(李埴)[1463~1502], 母는 사정을 지낸 박치(朴緇)[1441~1499]의 딸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이해(李瀣)[1496~1550]의 동생이다. 첫 번째 부인은 진사 허찬(許瓚)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이며, 두 번째 부인은 광흥창봉사 권질(權礩)[1483~1545]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첫 번째 부인 김해허씨와 혼인 당시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초곡(草谷)에 거주하고 있었다.
慶尙道 예안현(禮安縣) 온계리(溫溪里: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左贊成 이식(李埴)의 7男 1女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죽은 지 4년 만에 고향 사람들이 陶山書堂 뒤에 書院을 짓기 시작해 이듬 해 낙성하여 陶山書院의 賜額을 받았다. 그 이듬 해 2월에 位牌를 모셨고, 11월에는 문순(文純)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1609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고, 그 뒤 李滉을 주사(主祀)하거나 종사하는 書院은 全國 40여개 處에 이르렀다.
著書로는 전습록변,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역학계몽전의, 자성록, 송원이학통록 등이 전해지고 있다.
諡號는 문순(文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