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아름다운 詩

秋雨

쉬어가는 여유 2022. 11. 3. 15:56

秋雨 --張維--

가을 비

 

秋雨晩廉纖(추우만염섬)

가을 비 저녁나절 부슬부슬 내리는데

輕寒衾薄縑(경한금박겸)

얇은 비단 이불에 한기 느껴지네

應催菊花發(응최국화발)

국화꽃 어서 피라 재촉 하는지

逐暮雲添雨(축모운첨우)

저녁 구름 좇아서 비는 더 흩뿌리고

草浥蟲聲苦(초읍충성고)

비에 젗은 풀숲 고달픈 풀벌래 울음

天長雁翅霑(천장안시점)

하늘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날개 축축히 젖었으리

今宵枕上聽(금소침상청)

오늘밤 배갯머리서 내내 비 오는 소리 들으려니

殘滴灑踈簷(잔적쇄소첨)

처마 끝에 빗방울 떨어 흩어지는 소리를


※秋雨:가을 비 ※廉纖:가을 비가 솔솔 내리는 모양 또는 그 비

※輕寒:약간 추운 추위 ※衾薄縑:얇은 비단 이불

※催:재촉하다.독촉하다.※暮:저물다.늦다.

※草浥:젖은 풀잎 ※翅霑:젖은 날개

※今宵:오늘 밤 ※殘敵:패하여 쫓긴 나머지 적군

※灑: 뿌리다.깨끗하다. ※踈:소통하다.트이다.

 

 


張維(1587~1638)

本貫은 덕수(). 字는 지국(), 號는 계곡(谿)·묵소(). 장례원사의 장자중()의 曾孫으로, 할아버지는 목천현감 장일()이고,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숭원()의 딸이다. 우의정 김상용()의 사위로 효종비 인선왕후()의 아버지이다. 김장생()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9)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 독서당의 다른 이름)에 들어갔다. 이듬해 겸설서를 거쳐 검열·주서 등을 지냈다. 1612년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해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고 봉교를 거쳐 전적과 예조·이조의 낭관을 지내고, 그 뒤 대사간·대사성·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이듬해 신풍군()에 책봉되어 이조참판·부제학·대사헌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하였다.

그 뒤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를 겸임했고, 1629년 나만갑()을 신구(: 억울하다고 여긴 죄를 바로잡아 구제함)하다가 나주목사로 좌천되었다.

다음 해 대사헌·좌부빈객()·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1631년 원종추숭론()이 대두하자 반대하고 전례문답() 8조를 지어 왕에게 바쳤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공조판서로 최명길()과 더불어 강화론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부음()으로 18차례나 사직소를 올려 끝내 사퇴했고, 장례 후 과로로 병사하였다.

일찍이 양명학()에 접한 그는 당시 주자학()의 편협한 학문 풍토를 비판해, 학문에 실심()이 없이 명분에만 빠지면 허학()이 되고 만다 하였다. 또한, 지행합일()을 주장, 마음을 바로 알고 행동을 통해 진실을 인식하려 했던 양명학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이식()은 그의 학설이 주자()와 반대된 것이 많다 하여 육왕학파()로 지적했으나, 송시열()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와 주자를 주로 했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고 칭송하였다.

천문·지리·의술·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신흠()·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著書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계곡만필』·『계곡집』·『음부경주해()』가 전한다. 신풍부원군()에 봉해졌으며 領議政에 追贈되었다. 諡號는 문충()이다.

[네니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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