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여명(黎明)이 다가오기도 전에 살며시 대문을 나서니 차가운 밤공기가 살갖을 파고든다.
오늘은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구봉대산을 찾아 이렇게 새벽잠을 설치며 길을 재촉해본다.영월하면 생각 나는건 난 비운의 임금 노산군 즉 단종(端宗)임금이 생각 나는 슬픈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가진 영월을 찾게 된것은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중의 하나인 法興寺와 구봉대산을 오르기 위해서다.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를 제외하곤 모두 강원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설악산 봉정암,태백산(함백산)정암사,오대산 상원사,그리고 이곳 사자산 법흥사이다.
법흥사의 주봉은 사자산이지만 우청룡에 속하는 구봉대산이 유명한것은 아홉개의 봉우리 마다 우리 인생여정을 담은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正午가 다되어 갈무렵 법흥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먼저 적멸보궁을 둘러보기 위해 얕은 언덕길을 오르니 마치 병충처럼 빙둘러서 있는 바위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적멸보궁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지지만 난 오늘도 佛心이 약해서인지 法堂안으론 성큼 들어서질 못하고 법당 뒤편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놓은 곳으로 발길을 돌리니 지난번 내린 눈이 아직도 한쪽면에 소복히 쌓여 있다.
잠시 두손모아 합장 기도를 해본다.항상 그랬듯이 오늘도 무사산행과 가족의 건강을 빌어 보면서....
다시 앞으로 나오니 법당 기둥에 새겨진 주련(柱聯)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萬代輪王三界主 만대까지 불법의 수레를 굴린 삼계의 주인이여
雙林示寂幾千秋 쌍림에 열반 하신 뒤 몇 천년이던가?
眞身舍利今猶在 진신사리 지금도 오히려 남아 있으니
普使群生禮不休 수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예불을 쉬지 않게 하네.
법당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발길을 재촉하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마치 사열을 하듯 우릴 반겨주고 있다.전형적인 고유의 수종인 적송의 향기를 맏으며 비탈길을 오르니 지난밤 살짝 내린 눈길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기만 하다.도란도란 얘기를 하다보니 저만치 널목재가 눈앞인데 겨울임에도 등뒤엔 작은 실개천이 된듯이 땀방울이 흘러 내린다.회장님 '曰' 오늘은 널목재에서 점심을 해결하자 하시니 우리 일행은 한반도의 동쪽끝에 외로이 뜨있는 독도마냥 한쪽 귀퉁이에 둘러 앉아 도시락을 펼치니 생각보다 날씨가 차갑게 느껴진다.힘들게 짊어지고 온 쇠주 한잔을 오늘도 어김없이 천지신명과 산신님께 먼저 "고수레"를 하고 다음잔 한잔을 삼키니 금방 몸에 溫氣가 퍼져옴이 느껴진다.포만감을 느끼기도 전에 주섬주섬 베낭을 정리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인생 여정길로 접어드니 바로 눈앞이 제1봉인 양이봉이다.養以란,부모님의 음덕으로 뱃속에 잉태함을 의미한다고 한다.어머니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세상에 태어남을 兒以라 일컬었는데 아홉달의 짧은 기간 엄마의 배속에서 세상과의 만남의 시간이 짧아서인지 1봉에서2봉까지의 거리는 너무나 짧기만 하다.
제3봉은 長生峰, 인간의 유년기 및 청년기를 그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어쩌면 이시기가 자식이 부모의 도움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제4봉은 官帶峰으로 이는 벼슬길에 나서기 전 기초를 충실히 다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아마 사회의 초년생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겠다.제5봉은 大王峰, 인생의 절정기를 이르는 말이며 이때는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인것 같다.제6봉은 觀望峰,쉬임없이 앞만보며 가족과 자신을 위해 달려왔던 세월을 잠시 뒤돌아 보고 지친 육신을 잠시 쉬었다 감을 의미한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정상엔 잠시 쉬어갈 空間인 넓은 바위와 고목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잠시 쉬어가라 속삭이는 것만 같다.
제7봉은 쇠봉(衰峰)으로 힘없이 늙어 쇠약해져 가는 인생길을 의미한다고 한다.내 평생을 몸담았던 직장에서도 나이들어 힘없고 경쟁에서 밀려나는 時期가 아닌가 싶다. 제8봉은 北邙峰으로 인간이 이승을 떠나 북망산으로 가는것이라 한다.인간은 언젠가는 이승을 하직하게된다.하지만 각 봉우리에 새겨진 글처럼 고비고비가 있게 마련인데 어려운 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서 이곳까지 오느냐가 인생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제 인생의 긴 여정은 끝이나고 산을 사랑하고 덕을 베푼자만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불교의 輪廻說에 의한 輪廻峰이 제9봉이다.그런데 안내판의 글자엔 '윤'자의 한자 표기가 잘못 되어 있다.輪廻를 "閏廻"로 표기 해놓았다.
윤회란?중생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서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천명한 사상인데 표시판의 한자는 윤달이 돌아옴을 얘기하는 말이니 잘못 표기된 것이다.
굽이굽이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거닐며 아홉봉우리를 세어 보니 우짜면 아홉 봉우리요 어찌 세다보면 아홉봉우리가 넘기도 하다.하지만 궂이 숫자에 연연하고 싶진 않다,흔히들 우리는 아홉이란 숫자는 나쁜뜻으로 알고 있다.아홉수를 피해라는 말처럼 9라는 숫자는 단수의 끝자리라서인지 모르겠다.하지만 바둑이나 정치에선 9의 숫자가 최고의 경지를 뜻하는걸 보면 9의 숫자에도 서로 양면성이 있는가 보다.
제8봉 북망봉이 구봉대산의 주봉으로 자리잡고 있는것은 아마도 인생의 종착점이라 그런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부터 9봉 윤회봉까지의 길은 이승이 아닌 死後世界의 길이므로 우리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다음 生을 바라는 희망의 길이 아닐까 싶다.
윤회봉을 뒤로하고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은 너덜지대에 급경사 구간이 간간히 있어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응달엔 간간히 잔설이 남아 있고 계곡의 두꺼운 얼음아래엔 맑은 물이 저 넓은 주천천을 찿아 소풍길을 떠나고 있다.
드디어 웅장한 獅子山法興寺 일주문이 우릴 반겨준다.일주문에서 바라본 사자산은 정말 知慧와 光明의 聖地다운 기운이 넘쳐나는것만 같다.오늘 하루 밤을 지세운 달빛을 뒤로하고 여명의 시간에 출발하여 이곳 슬픈 역사의 고장 영월까지 와서 오른 구봉대산은 나의 인생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5대 적멸보궁 중, 마지막으로 밟아보는 행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끝으로 천리 먼길 함께 해주신 바우산악회 집행부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좋은 추억여행 오래도록 가슴속 깊이 간직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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