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家 (촌가) 李德懋(이덕무1741~1793)
荳穀堆邊細逕分(두곡퇴변세경분)
콩깍지더미 옆 작은 길 나누어 지고
紅暾稍遍散牛群(홍돈초편산우군)
붉은 해 솟으니 소 떼는 여기저기로 흩어지네
娟靑欲染秋來峀(연청욕염추래수)
가을 하늘은 푸른빛으로 곱게 물 들었으니
秀潔堪餐霽後雲(수결감찬제후운)
비 갠뒤의 빼어나게 깨끗한 하늘의 구름 먹고 싶어라.
※荳(두):콩 ※堆(퇴)쌓다 ,쌓이다 , 놓다, 흙무더기,언덕 (堆積物)
※逕(경):좁은 길, 소로, 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지나다,가깝다,지르다
※暾(돈):. 아침 해, (해가)처음 돋다,비추다,따스하다,수더분하다
※稍(초):점점, 점차, 차츰차츰,이미, 벌써,약간 ※娟(연). 예쁘다,아름답다,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양
※秀潔(수결)빼어나고 깨끗함 ※堪(감):견디다,참다, 참아내다,뛰어나다, 낫다,맡다
※霽(제): 비가 개다,비가 그치다,노여움 풀리다,풀리게 하다
■李德懋(1741~1793)
本貫은 全州이다. 字는 무관(懋官), 號는 아정(雅亭)인데 이 밖에 형암(炯庵)ㆍ청장관(靑莊館) 또는 동방일사(東方一士)라는 호도 사용했다. 특히 즐겨 사용한 청장(靑莊)이라는 호는 일명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린 해오라기를 뜻하는데, 청장은 맑고 깨끗한 물가에 붙박이처럼 서 있다가 다가오는 먹이만을 먹고 사는 청렴한 새라고 한다. 청장으로 호를 삼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성격을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이덕무는 서울 출신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성호(聖浩)이고 어머니인 반남 박씨는 토산현감 사렴(師濂)의 딸이었다. 할아버지 필익(必益)은 강계부사를 지낸 인물이었다. 6살에 아버지가 아들인 이덕무에게 한문을 가르치고자 중국 역사책인 [십구사략]을 읽혔는데, 1편도 채 끝나기 전에 훤히 깨우친 영재였다. 16세에 동지중추부사 백사굉의 딸 수원 백씨와 혼인하였고, 20세 무렵에는 남산 아래 장흥방(현재 종로구 부근)에서 살았다. 이 무렵 집 근처 남산을 자주 오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지었다. 1779년 그의 나이 39세에 정조에 의해 규장각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기용되면서 벼슬길이 열렸다. 1789년에는 박제가, 백동수와 함께 왕명에 따라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하기도 했다. 검서관 이후에 사도시주부, 광흥창주부, 적성현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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