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寒 --申欽--
一病過冬至(일병과동지)
한 번 병들었다가 동지를 지나고 나니
今朝是小寒(금조시소한)
오늘 아침이 무릇 소한이구나.
又看新歲曆(우간신세력)
또 새해의 달력을 보노라니
那復少年歡(나부소년환)
어찌 다시 소년이 기뻐하겠소
酒暖金盃凸(주난금배철)
따뜻한 술 볼록한 금잔에 담아
更催玉漏闌(경최옥루란)
짧은 밤을 재촉하여 소중히 없어지는 것을 가로막는구나
閑愁消不得(한수소불득)
근심 등한시하여 얻지 못하고 사라지니
聊此共團欒(료차공단란)
지금 함께 둥글게 모여 즐겨나 보세
※今朝:오늘 아침 ※新歲:새해※那:어찌
※復:다시. 거듭하다 ※歡:기뻐하다. 사랑하다
※暖:따뜻하다. 따뜻한 기운
※金盃:금잔 ※凸(철):볼록하다 ※更:고치다. 개선하다
※催:재촉하다. 독촉하다. 일어나다.
※漏:새다. 틈이 나다. 빠뜨리다 ※闌:가로막다. 방지하다.
※閑愁:한가한 근심 ※消:사라지다. 삭이다. 소멸하다
※聊:귀가 울다. 힘입다. 편안하다. 즐겁다. 두려워하다
※團:둥글다. 모이다. 화목하다.
※欒:야위다. 둥글다
■申欽(1566~1628)
朝鮮 中期의 文臣이자 書藝家이다. 字는 경숙(敬叔), 號는 상촌(象村) · 현헌(玄軒) · 현옹(玄翁) · 방옹(放翁) · 여암(旅庵) · 경당(敬堂) · 남고(南皐) · 백졸(百拙), 本貫은 평산(平山)이다. 祖父는 신영(申瑛), 父親은 신승서(申承緖)이며, 母親은 송기수(宋麒壽)의 딸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아들 신익성(申翊聖)은 宣祖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라며 송기수와 이제민(李濟民) 門下에서 修學했다. 1585년 進士試와 生員試에 차례로 合格하고 1586년 別試文科에 及第하였으나 이이(李珥)의 側近으로 배척받아 成均館 권지(權知)에 배정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철(鄭澈)의 從事官으로 활약하여 지평에 升進되고, 吏曹情郞 · 집의 · 교리 · 응교 등을 거쳤다.
1599년 장남 신익성(申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함에 따라 同副承旨에 오르고 이어 兵曹 · 禮曹 · 刑曹 參議 등을 두루 지냈다. 1601년 『춘추제씨전(春秋諸氏傳)』 編纂에 참여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고 藝文館 提學이 되었으며, 成均館 大司成 · 漢城府 判尹 · 兵曹 判書 · 禮曹 判書 等을 歷任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左議政으로 世子를 수행하여 전주에 피난하였고 9월에 領議政에 올랐다.
申欽은 宣祖의 두터운 신망을 받으며 문한직(文翰職)을 兼任했고, 外交文書와 각종 儀禮文書 作成과 詩文 등에 참여하였다. 율법(律法) · 산수(算數) · 의복(醫卜)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이항복(李恒福) · 이수광(李睟光) 등과 교유했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귀(李廷龜) · 장유(張維) ·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 4대가로 불렸다. 神道碑와 墓誌銘 등을 많이 남겼는데, 仁祖의 명을 받고 지은 <영창대군신도비(永昌大君神道碑)>와 <김제남신도비(金悌男神道碑)> 등이 代表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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