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아름다운 詩

客至

쉬어가는 여유 2023. 10. 11. 16:15

客至    =杜甫=

손님이 와서

舍南舍北皆春水(사남사북개춘수)
집 앞이나 집 뒤에 봄 시냇물 두루 미치고

但見群鷗日日來(단견군구일일래)
다만 보이는 건 날마다 떼 지어 오는 갈매기뿐이네
花徑不曾緣客掃(화경불증연객소)
꽃 핀 오솔길 손님 없어 이전엔 쓸어 본 적 없지만
蓬門今始為君開(봉문금시위군개)
초라한 문 오늘 처음으로 그댈 위해 열었소.
盤飧市遠無兼味(반손시원무겸미)
소반의 저녁밥은  시장이 멀어 변변치 못하고
樽酒家貧只舊醅(준주가빈지구배)
통에 넣어 빚은 술도 없는 살림이라 묵은 탁주뿐이라오.
肯與鄰翁相對飲(긍여린옹상대음)
그래도 이웃  노인과 함께 마셔도  괜찮다면
隔籬呼取盡餘杯(격리호취진여배)
울타리 너머로 불러 남은 술을 비워봄세

 

 

※舍:집.  ※皆:다.모두.함께.다 같이.두루 미치다

※但:다만  ※日日:날마다

※徑:지름길.논두렁길 ※曾:거듭.이전에 

※盤;소반.쟁반 ※飧:밥.저녁밥.밥을 권하다.

※兼:겸하다.아우러다.

※蓬門:가난한 사람이나 은거하는 사람의 집

※樽酒:통술.통에 넣어 빚은 술

※醅:거르지 않은 술 

 

 

 

 

■杜甫

중국의 당대(唐代)의 시인. 자는 자미(子美). 두예의 13대 손. 소릉(少陵 : 장안부근(長安附近))에 거주했고,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이 된 데서 두소릉ㆍ두공부라고도 불리며, 두목에 대하여 노두(老杜)라고도 일컫는다. 허난[河南]의 궁센(鞏縣)에서 출생. 몰락기에 있는 중산 관리 계급의 출신. 어려서 어머니 최 씨(崔氏)를 잃고, 뤄양의 숙모 밑에서 양육되었다. 24세 때 진사 시험에 낙제, 산시[山西, 730], 장쑤 및 저장(731~735)ㆍ산둥ㆍ허베이 (736~740, 745) 등에 여행을 시도하고, 이 여행 중에 이백ㆍ고적을 대면(對面), 큰 영향을 받았다. 751년에 집현원대제(集賢院待制)ㆍ우위부주조참군(右衛府胄曹參軍) 등 하급 관직을 역임했다. 756년 숙종의 행재소(行在所)에 가는 도중 도둑에 잡힌 후, 장안에 유폐되었다가 757년 탈출에 성공, 봉상(鳳翔)에 이르러 좌습유(左拾遺)가 되었다. 759년 기근으로 관직을 사임, 가족과 함께 간쑤[甘肅]의 진주(秦州)에 여행, 《북정(北征)》ㆍ《삼리 삼별(三吏三別)》을 지었다. 진주에서 남쪽으로 따라가서 동곡(同谷), 또 쓰촨[四川]에 입성, 759년에 청두[成都]에 도착했다. 이 여행 중의 시는 첨예한 불안으로 차있다. 병란으로 청두[成都]를 떠난 일도 있으나, 대체로 청두 서교(西郊)의 완화 초당(浣花草堂)에 안주, 약초 및 야채를 경작했다. 764년에 친구 엄무의 소개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이 되었다. 그러나 동료와 불화, 곧 관리 생활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충칭[重慶]을 거쳐 윈양[雲陽]에 이르렀다. 그는 지병(持病)으로서 폐병, 당뇨병(糖尿病)을 갖고 있었는데, 더욱 쇠약해져 2년 동안 기주(夔州)에서 요양하고, 768년에 무협(巫峡)을 떠나 궁안[公安]ㆍ웨양[岳陽]ㆍ창사[長沙]ㆍ헝저우[衡州]를 전전하다 770년 사망했다. 기주 시대(夔州時代)의 시는 완성의 경지에 도달, 《추흥 팔수(秋興八首)》 등의 명작이 많다. 그는 중국 문학사상 제1의 시인으로 불린다. 율시(律詩)를 완성하고, 한위악부(漢魏樂府) 민요(民謠)의 정화(精華)를 입함으로써 고체시(古體詩)를 신생(新生)케 했다. 더욱 종래의 문학 전통의 집대성이라는 형식으로 서정시ㆍ서사시를 창조했다. 많은 고난은 그를 폭넓은 휴머니스트가 되게 하고, 그는 그러한 자기를 성실하게 작품에 표현했다. 이백(李白)과는 대조적인 2대가로서 병칭되기도 한다. 현재 《두공부집(杜工部集 20권)》이 전해지는데, 고체(古體) 399, 근체(近體) 1006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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