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아름다운 詩

贈別

쉬어가는 여유 2020. 8. 18. 14:01

贈別 --崔慶昌--(1539~1583)

새벽 꾀꼬리의 이별 노래

 

玉頰雙啼出鳳城(옥협쌍제출봉성)

아름답고 고운뺨에 눈물지며 궁궐 나서니

曉鶯千囀爲離情(효앵천전위이정)

새벽 꾀꼬리 이별이 슬퍼 울어 되네

羅衫寶馬汀關外(나삼보마정관외)

비단 적삼에 좋은 말 타고 시골 물가에 이르니

草色迢迢送獨行(초색초초송독행)

풀빛은 아득하여 홀로 떠나는 걸 전송하네

 

※玉頰(옥협):아름답고 고운 여인의 얼굴 ※頰(협):뺨.꽤적하다.기분이 좋다

※啼(제):울다.소리내어 울다.눈물 ※鳳城(봉성);궁궐

※羅衫{나삼):얇고 가벼운 비단으로 지은 적삼 ※寶馬:임금이 타는 말 뛰어 나게 좋은 말

※汀(정):물가.모래섬.작은 물줄기.물맑은 모양

※關外:서울 밖.시골 ※曉鶯:새벽 꾀꼬리 ※囀(전):지저귀다.바뀌다.울림.가락

※草色:풀빛 ※迢(초):멀다높다.먼 모양 ※迢迢(초초)아득하다.멀고 멀다.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

 

밀양 초동 과수원에 핀 맥문동

 

 

■崔慶昌(1539~1583)

本貫은 해주(海州). 字는 가운(嘉運), 號는 고죽(孤竹). 全羅道 영암 출생. 최충(崔冲)의 18대손이며 최자(崔滋)의 13대손이다. 父는 최수인(崔守仁)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이다.

최경창은 백광훈(白光勳)·이후백(李後白)과 함께 양응정(梁應鼎)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555년(명종 10) 17세 때에 을묘왜란으로 왜구를 만나자, 퉁소를 구슬피 불어 왜구들을 향수에 젖게 하여 물리쳤다는 일화가 있다.

1561년(명종 16) 23세 때부터 상상(上庠)에서 수학했다.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됐다. 예조·병조의 원외랑(員外郎)을 거쳐 1575년(선조 8)에 사간원정언에 올랐다. 1576년(선조 9)영광군수로 좌천됐다. 이때에 뜻밖의 발령에 충격을 받고 사직했다. 그 뒤에 가난에 시달렸다.

다음해에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으로 복직했다. 1582년(선조 16) 53세에 선조가 종성부사(鍾城府使)로 특별히 제수했다. 그러나 북평사의 무고한 참소가 있었고 대간에서 갑작스러운 승진을 문제 삼았다. 그래서 선조는 성균관직강으로 고치도록 명했다. 최경창은 상경 도중에 종성객관에서 죽었다. 저서로 『고죽유고』가 있다.

최경창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이이(李珥)·송익필(宋翼弼)·최립(崔岦) 등과 무이동(武夷洞)에서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또한 정철(鄭澈)·서익(徐益) 등과 삼청동에서 교류했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이달(李達)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다. 그의 시는 청절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얻었다.

文章에도 뛰어나 이이·송익필 등과 함께 8문장으로 일컬어졌다. 서화에도 뛰어났다.

肅宗 때에 淸白吏에 綠腺되고 강진()의 서봉서원()에 봉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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