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懷 = 柳方善=
마음의 회포를 쓰다
門巷年來草不除(문항년래초부제)
여러 해 문밖의 풀조차 베지 않았더니
片雲孤木似僧居(편운고목사승거)
조각 구름 나무 하나 절간과 비슷하네
多生結習消磨盡(다생결습소마진)
오랜 세월 맺힌 습관 닳아 없어졌지만
只有胸中萬卷書(지유흉중만권서)
오직 마음 속엔 만권의 서책만 품고 있네
※書:쓰다 ※懷품다.마음.가슴.생각
※巷:문밖 ※除:덜다.없애다.버리다.
※片雲:조각 구름
※孤:외롭다.홀로.하나.단독
※似:닮다.같다.비슷하다.흉내내다
※多生: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상
※習:버릇.습관
※消磨:닳아 없어짐
※只:다만.오직.오직~하여야만
※胸中: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천성산 원효암
■ 柳方善(1388~1433)
선의 학자. 字는 자계(子繼), 號는 태재(泰齋). 本貫은 서령(瑞寧). 사암(思菴) 숙(淑)의 증손, 서흥(瑞興) 부원군 기(沂)의 아들. 어려서 권근(權近)ㆍ변계량(卞季良)에게 배우고 일찍이 문명이 높았다. 1405년(태종 5) 사마시에 합격, 1409년 문망(文網)에 걸려 영양(永陽)에 유배되니, 태연히 서산(西山)의 경치를 즐기며 송곡(松谷)에다 서당을 짓고 고을 아이들을 가르쳤다. 1415년 사면되어 원주(原州)로 돌아갔다가 다시 정배된 후 1427년(세종 9) 특별히 용서를 받고 조정에서는 유일(遺逸)로서 주부(主簿)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세종은 그를 소중히 여겨 집현전 학사 등을 보내어 학문을 물어가고, 사림(士林)들은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사례(師禮)로 대하였다. 또한 그가 경제에 밝음을 더욱 깨닫고 크게 등용하려던 차에 불행히 병들어 사망했다. 시문 뿐 아니라 모든 학문에 정통했으며, 서거정(徐居正)ㆍ이보흠(李甫欽) 등 이름있는 선비가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柳方善]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